폭우로 문이 열리지 않았던 반지하 방......
태풍 매미가 우리 삶을 강타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날 그 시각에 이웃집 아저씨가 우리에게 대피하라고 문 두드려서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모녀도 그렇게 물에 빠져 죽었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하게 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비바람 치던 날 한밤중에 네 살(2003년 9월 당시) 된 딸을 챙겨 업고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억지로 열었을 땐 이미 마당에 물이 그득 차올라서 억지 반으로 열린 문 너머로 영화 속의 장면처럼 집안으로 물이 넘쳐 들어왔다.
간발의 차이로 큰 일 없이 살아서 나왔다. 세상과 단절하고 살던 우리 모녀에게 그때도 생과 사의 하나의 변곡점이었던 거다. 해일 비슷한 일기예보조차 없었고, 명절이어도 찾는 사람 없고 찾아갈 데 없어서 일찍 씻고 누운 자리에서 참변을 당할 뻔했던 거다.
그때는 너무나 긴장해서 울 수도 없었다. 어둡고 비바람 치던 그때 급류에 휩쓸려서 물속에서 허벅지를 긁는 파편이 강물처럼 힘차게 흘러가던 이웃집 마당을 엉금엉금 기어가듯 헤쳐가는데 내 등에 올라탔던 딸이 극도의 공포감에 내 목을 꽉 졸라서 물에 빠져 죽기 전에 목 졸려서 죽겠다는 생각에 무서운데 화나고 어이없어서 실소가 터졌던 순간. 왜 공포영화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그렇게 짧은데도 길게 편집하는지 이해하게 된 그날의 기억이 나에겐 단순히 산전수전에 수전의 경험을 더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거로 생각한다.
얼마나 쉽게 삶이 단순한 이유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위협당할 수 있는지 체험한 거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해졌던 게 물난리가 나도 빠져 죽지는 않을 적당한 언덕에 살겠다는 것 한 가지였다.
그다음 몇 해 뒤에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에 빠져 죽지는 않을 만큼 적당히 언덕진 곳에 이사해서 여태 큰 탈 없이 지낸다. 내가 살고 보니 아직도 그런 위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많은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야 크지만 내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사람인 거다.
자신이 겪지 않은, 겪지 않을 고통이어도 근본적인 삶을 위협하는 위험과 고통은 이 사회에서 누구도 겪지 않게 공감하고 동참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말 한마디 더 보태도 내 삶이 흉이 되지 않을 만큼은 잘 살아야겠는데 갈 길은 멀고 다리는 퍽퍽하다.
그래도 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안타까운 목숨에 대한 미안함이 명치끝에 걸려서 그만 아픈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겠다. 어쩔 수 있는 일은 어찌할 길을 만드는 데에 선명하게 나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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