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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예민, 까칠

by 자 작 나 무 2022. 8. 11.

고립이 그리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는데 까칠해졌다.

 

한마디 건네는 사람은 그나마 나를 걱정해주는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생각해야 하는데 오늘은 순간 몹시 까칠한 자신을 발견했다. 30대여서 가볍게 넘어간 증상이 내게도 같을 것으로 짐작하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응원해주는 소리에 감사가 아닌 까칠함을 드러냈다. 생각보다는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냥 놀면서 격리를 즐긴 것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불편해졌다.

 

말한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 혼자 힘든 감정에 치어서 불편한 것이 하필이면 그렇게 느껴지게 말을 받았다. 상대의 의도도 잘 알고 내 마음도 그렇지 않은데 며칠 아픈 끝에 회복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일터에서 오는 연락에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 반응했다.

 

그나마 일터가 없었다면 세상에서 내가 그간 아픈 상태로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고작해야 두 명밖에 몰랐을 거다. 그걸 누군가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아직도 조금 예민한 상태다.

 

이렇게 단순하게 고아처럼 사는 것을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말하지 못할 뿐이지. 말하지 않을 뿐이지. 밤잠을 못 잘 만큼 온몸이 통증에 시달릴 때 어릴 때 내 몸에 찬물 적신 수건을 올려주시던 그 손길을 그리워했다. 아무 대가 없이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위한 마음을 주는 대상이 있다는 게 그 자체로 삶의 고통을 견디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이유 없이도 숨 쉬는 한 괴로워도 존재할 거다. 이유가 있거나 말거나, 거룩하거나 비천하거나 그런 건 관계없다. 그냥 사는 거다. 살아있으니까.

 

*

괜찮다고 생각해야 하니까 괜찮다고 하는 거다. 이 정도인데 엄살떨 수는 없으니까.

묻지 마

말 걸지 마

어차피 관심도 없었잖아

 

 

 

*

회복하는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는데 못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느라 조금 힘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머리가 맑아지지 않아서 한 글자도 못 쓰다가 오늘 겨우 몇 줄 썼다.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마음이 촉박하고 입에서 더운 기운이 훅훅 올라온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해서 사는 건 아니니까 괜찮다.

그나마 일이라도 해야 한 다리 걸치고 긴장도 하고 귀찮은 척하면서 그 궤도에서 남들처럼 사는 시늉하며 살 수 있으니 아프지 말아야겠다. 아니, 아픈 게 힘들어서 못하겠다.

혼자 있으면서 아픈 건 비참하다.

 

나는 이런 것에 꽤 익숙해져서 밖에 나가지 않아도 답답하지도 않고, 아파서 기운이 달리니까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최대한 아무도 나에게 말 걸지 말고 나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말기를 바랐다.

완벽한 고립과 침묵 속에 7일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랐는데 오늘 문자로 연락을 받았고 그날 확진된 동료에게 건네준 과일칼을 돌려받았다. 

 

이 상태에서 점차 나아질 때까지 좀 내버려 둬!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는데 너무 빨리 건드리잖아.

내가 의무감에 시달리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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