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새벽에 소리도 없이 지나갔다. 거친 바람 소리에 늘 잠을 설쳤던 다른 태풍과 다르게 의외로 조용하게 지나가서 태풍이 지나는 줄도 몰랐다. 이 바닷가는 남쪽 바닷가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해서 온라인 수업을 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오늘 날씨는 좋았다.
이런 날 입을 좀 다물고 있었으면 괜찮았을까. 어제 밤늦게까지 통화하고 잠을 제때 못 자서 피곤한데 오늘 그 연구실에 출근하셨던 다른 한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 좀 했더니 목이 영 깔깔하다. 지난주에 억지로 떠맡은 포도 한 상자, 일종의 갑질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강매(?)한 분의 요구에 거절하기 곤란한 우리 입장은 생각지 않는 이 절묘한 분위기에 관해 결국 말하고 말았다. 포도를 씻어서 그릇째 들고 가서 열심히 먹어도 이상하게 불편한 포도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이상하게 몸이 피곤한 것을 보니 잠은 어떻든 방해받지 않고 푹 자야 할 모양이다. 어제는 태풍 전야여서, 오늘 재택근무가 예정되어 있어서 어쩐지 조금 넘쳐도 될 줄 알고 밤에 잠 안 자고 놀았다. 예상과 달리 날씨가 좋은데, 출근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재택근무인데도 출근해서 오후까지 혼자 열심히 일하고 왔다.
내일 분위기는 편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냥 할 일만 열심히 하고 눈도 반만 뜨고 귀도 반만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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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왜 그런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염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속상했는데 오늘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나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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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카테고리에 있던 글을 공개 카테고리에 공개글이나 잠긴 글로 옮기는 작업을 몇 개 했다. 지난 일기를 읽으니 그때 느꼈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어쩐지 웃겼다. 얼마나 그 감정을 털어버리고 싶어 했는지 느껴지는 일기가 꽤 있다. 누군지 겨우 기억나는 정도에 이후에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인물 사이에서 겪은 감정적 충돌도 그대로 그려진 것이 있어서 읽으면서 한참 웃었다. 지난 일은 이렇게 남의 일처럼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