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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주거침입

by 자 작 나 무 2022. 9. 16.

 

*

이곳에 이사 와서 새벽 3-4시에 떠드는 옆집 이야기를 간단하게 쓴 적이 있다. 너무 상습적으로 시끄럽게 굴어서 인사도 뭐도 하고 싶지 않아서 여태 피해서 다녔다. 

 

*

퇴근하고 녹초가 된 상태로 속옷바람에 누워있는데 누가 문을 세게 두드린다. 찾아올 사람이 없어서 문 근처에 가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다짜고짜 문을 연다. 어떻게 된 것인지 문 손잡이를 잡고 당겨서 나도 있는 힘껏 그 문이 열리지 않게 꼭 잡고 있었다.

 

거의 어깨가 빠질 지경으로 문 손잡이를 잡고 그 문이 열리지 않게 버텼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한다.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지 않고, 그 여자가 열어서 손잡이를 밖에서 붙잡고 있는 문 손잡이를 붙들고 있어서 신고를 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한참을 버티다가 도와달라고 신고 좀 해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 힘의 균형이 내쪽으로 기울었을 때 문 손잡이를 끌어당겨서 잠그고 휴대전화를 찾아서 112에 신고했다. 일부러 스피커폰으로 소리 들리게 신고했는데도 여전히 그 미친 X가 문 앞에 버티고 소리를 지른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난 정신이 완전히 빠진 상태로 도와달라고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주거침입으로 처벌하려면 다시 신고와 조사 절차를 거쳐야 한단다. 문을 닫았는데 다 잠기지 않았거나, 그 미친 X가 마스터키나 번호키를 가졌거나 그런 모양이다.

 

경찰이 가고난 뒤에 눌렀던 감정이 그대로 올라오니 무서웠다. 딸에게 전화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에 출동한 경찰은 그 여자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이성적인 대화가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는데 두 번째 두 명의 경찰이 더 출동해서 내가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듣고는 그 여자를 경찰차에 태워서 데리고 갔다.

 

아직 놀란 것이 가라앉지 않아서 머리가 멍하다. 문 손잡이를 놓으면 어떤 일을 당할지 흉기라도 들었을지 알 수 없어서 도무지 그 손잡이를 놓을 수가 없어서 한참 버텼더니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이러다 어이없이 미친 X 손에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언제든 번호키 정도는 무력화하고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선 잘 수 없을 것 같다. 

 

쉬었다가 청소하고 1차 고사 문제 출제하는데 온 힘을 쏟을 예정이었는데 정신이 확 나간다. 이 상황에서 평정을 찾는 방법은 내게 이게 우선이다. 글을 써서 정리하는 것. 해야 할 일만 없다면 바로 도망치듯 여길 빠져나가고 싶다. 놀라서 아직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싸우고, 문이 열리지 않게 싸우느라 지쳤다.

 

아...... 그 상태로 문이 열렸더라면 어쩔뻔 했나. 앞으론 집안에서도 옷을 잘 챙겨 입고 쉬어야 하나...... 

 

 

*

침입을 시도했던 미친 X는 새벽에 그렇게 떠들고 난리를 치던 옆집 사는 남자의 여친이라고 경찰이 알려줬다. 온정신이 아니란다. 그렇다고 용서하거나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나는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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