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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화를 풀자

by 자 작 나 무 2023. 5. 30.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혹은, 내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와 멀어지고 시간이 지나니까 이제야 내가 사람 같이 느껴진다. 가슴과 어깨에 잔뜩 해결해야 할 일거리를 주렁주렁 달고 주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기계처럼 반응해야 하는 일을 계속했다. 방학이면 쉬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방학이면 생기부에 쓸 다양한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고 마침내 완성본을 만들기까지 만만찮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시간을 보내느라고 마냥 쉬거나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능력이 커지면 또 한동안 잘 견딜 것이고,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일이 몰아쳐오면 결국 견디지 못할 거다.

 

올해 내가 맡게 된 일이 그랬다. 규모가 작은 학교에 가면 담임과 학년 업무 외에 또 다른 업무가 중첩되어 주어지기 때문에 고달프다. 이젠 그렇게 일에 내몰리고 장거리 출퇴근까지 해야 하는 곳에 가지 않아야겠다. 가리지 않고 나를 찾아주는 곳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은 이번 경험으로 접었다. 업무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고 나를 뽑아놓고 무조건 오라고 불렀다. 더 확실히 묻고 확인했어야 했다.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어떤 일을 얼마나 하게 할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말하면 오지 않을 것을 그들도 알았던 거다.

 

그 상황에서 생긴 돌발 사건이 겹치고 겹치니까 도무지 내가 참아서는 안 될 지경이 된 거다. 내 몸이 더 견디지 말라고 발악을 해준 덕분에 쉰다. 이제 한숨 돌리고 다음 달에 복직하기 전에 밀린 일을 일부는 처리하고 돌아가야 견딜 수 있을 거다.

 

*

어제에 이어 오늘도 김밥을 쌌다. 최소한의 재료를 준비하고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서 최소한의 식사를 하기로 했다. 꼬마 김밥을 쌀 때는 김을 4등분 한다. 나는 김밥용 김을 반으로 나눠서 꼬마김밥 말 듯이 작게 싸서 썰지 않고 베어먹는 김밥을 만들었다.

 

4등분한 김에 싼 꼬마김밥엔 재료가 정말 적은 양만 들어가야 말린다. 그 불편함과 부족함을 감안하여 김은 반으로 자르고 길이만 짧은 통통한 꼬마김밥을 만들었더니 두 개 먹으니 적당했다. 이상하게 통으로 다 말아서 썰어 먹으면 두 줄이나 먹게 되는데 이렇게 먹으니까 적게 먹어도 만족스럽다. 

 

어제는 작년에 삼천포에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매운 어묵김밥을 만들어서 먹었고, 오늘은 유부를 볶아서 준비하고, 당근 볶고, 남은 부추를 달걀에 듬뿍 썰어넣고 준비한 달걀말이를 큼직하게 넣은 김밥을 쌌다. 현미밥을 먹지 않으려는 딸 덕분에 그간 쓰지 못한 현미와 찰현미로 현미발아 밥을 만들어서 한 그릇씩 나눠 담아서 냉장고에 넣었다. 먹을 만큼만 데워서 먹으면 밥통 안에서 색이 변하거나 맛이 변하는 일 없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

된장에 마늘과 올리고당을 넣고 갈아서 찍어먹거나 올려 먹을 장으로 준비하고, 생선을 구워서 파를 곁들인 그 장을 올리면 맛이 어떨까. 이상하게 엊그제 잠결에 갑자기 떠오른 레시피 대로 음식을 해보고 싶은데 오늘은 김밥 만들고 나니 지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하기 시작하면 해산물은 빠이빠이다~ 그전에 생선도 좀 먹고 해조류도 좀 먹고......

분하고 불편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내 감정과 일상 외엔 기록하지 않기로 한다. 세상엔 똑똑하고 잘나고 말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굳이 여기서 한마디 더하고 떠들지 않아도 충분하다.

 

속세는 다양한 형태의 지옥이 현현한 세계다. 각자 다른 단계의 다른 차원의 삶이 다양하게 섞여서 살아내는 복합적인 초현실적 가상공간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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