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해선 집에 낯선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며칠 전에 다녀간 가스 검침원은 해마다 두 번씩 보니까 아는 얼굴이다. 내가 근무지를 옮겨 다니며 집을 비워서 약속 날짜를 바꾸거나 건너뛰어야 해서 개인적인 통화를 두어 번 한 뒤로 기억하는 모양이다.
손님이랄 것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누군가 방문할 때만 대충 티 나게 치운다. 이사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 그 해부터는 수시로 다른 지역에서 살다 오기를 반복하면서 짐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쌓아두기도 했다. 이사든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사 들기 전부터 쓰던 낡은 장판을 갈아주지 않고 입주한 바람에 정말 낡아서 볼품없는 장판 위에 물건이 많으니 청소해도 별로 표가 나지도 않는다.
에어컨 실내기에서 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외부로 뺀 관이 짧아져서 방보다 높아져서 물이 안으로 흘러드는 모양이다. 내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닌 위험한 위치에 배수관이 있으니 사람을 부를 수밖에 없다. 서비스 오는 직원 사진을 확인해 보니 옛날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한 번 고용된 직원이 오래 일하는 것으로 보아 일을 아주 잘하시는 모양이다.
내일부터 장마기간이니 에어컨을 계속 틀어야 할 테고 문제가 있으면 불편할 거라고 빨리 고쳐야 하지 않느냐고 마침 딸이 그 문제를 챙겨서 말해준다. 이미 서비스 신청 해놓고 날짜가 맞지 않아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답하면서도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주는 딸이 고마웠다.
바라지 않던 것을 받으면 고맙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오지 않으면 섭섭하다. 원래 내 것이 아니던 것을 내 것인 듯 탐낸 내 마음이 겹겹이 통증으로 돌아온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서 애정인 듯 착각하고 집착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위기에서 구해준 은인을 사랑하는 듯한 착각, 기우뚱한 내 머리에 위험할 때 받침 하나 세워주신 분께 그냥 감사한 것은 감사한 것으로. 이런 증후군도 있다지. 이름이 뭐더라?
연민과 애정은 엄연히 다르다. 연민을 애정으로 착각한 나는..... 좀 바보 같다. 내 감정은 덜 자라서 풋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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