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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외출, 조퇴를 연이어하고 내 일도 남에게 미루지 않고 오후 5시 이전에 세종 LH 건물까지 당도해야 했던 일정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촉박한 시간과 거리, 엄청난 폭우에 위태위태한 운전을 오랜 시간 해야 한다는 어려운 숙제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터넷으로 신청한 임대주택 서류 제출자 명단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회라고 여기고 그 먼 길을 달렸다.
세종시의 금요일 오후는 영화 속에 나오는 텅 빈 도시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래도 우린 한 번쯤 옮겨 가서 살고 싶어서 그 풍경에도 만족했다. 옆자리에 앉은 딸은 잔뜩 긴장해서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정성스럽게 해 줬다. 생전에 그런 폭우를 밖에서 목격하긴 처음이다.
간밤에 집에 와서 잠들고 싶어서 무리해서 밤운전을 하다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겁 먹고 폭우 속에 처음 눈에 띄는 IC로 나가서 숙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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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운전한 거리는 400km 이상.
시외로 출근해서 일하다가 시외로 볼일 보러 빗길을 60km 달려서 어딘가 다녀와서 또 일하다가 세종시까지 다녀왔다. 폭우를 뚫고 달린 거리가 여기저기 멀고도 길어서 내 머리는 자꾸만 뒤로 넘어간다
기획한 일을 마무리하고 낯선 곳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시작에 자축했다. 함께 온 딸이 불평불만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무리한 하루를 보냈는지 충분히 이해한 딸의 배려였다. 중부 지방의 폭우를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길에서 목격한 우리는 오늘은 함께 기억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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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도무지 익숙한 동네까지 돌아갈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급히 검색한 숙소를 찾아들어서 코스트코에서 산 물회를 맛보는데 양념맛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재료는 괜찮은데 이런 양념은 무슨 맛으로 먹나…..
일단 오늘은 이만 쓰고 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