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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피할 수 있는, 혹은 피할 수 없는, 재난

by 자 작 나 무 2023. 7. 16.

폭우와 해일 피해를 동시에 겪어봐서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우리 모녀가 수장되지 않게 알려준 사람은 이웃이었다. 그 당시(2004년) 동사무소에서 방송이라도 한 번 해줬다면, 뉴스로 남부 지방 해안지대 해일이 예상된다고 대피하라고 한 번이라도 알려줬다면 바닷가에 살던 우리가 미리 다른 곳으로 대피해서 극도의 위험에 처하는 상황은 피했을 거다.

 

금요일에 중부 지방에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를 타고 몇 시간이나 달렸다. 물이 그렇게 금세 불어날 줄 모르고, 짧은 시간에 그만큼 비가 쏟아질 줄 모르고 피신하지 못했거나, 통제되었어야 마땅할 길에 들어선 이들이 목숨을 잃은 뉴스를 접하고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허술한 시스템 밖에 갖춰지지 않아서 매년 이렇게 장마 때마다 사람이 이렇게나 죽는 게 말이 되나? 이게 정말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당연한 현실인가? 믿을 수가 없다. 지금이 1980년대 인가? 

 

그 정도 폭우가 예상되면 주민을 미리 대피하게 챙기고, 침수될 것이 뻔한 도로는 통제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상황에도 같이 살자고 세금 걷어서 국가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거 아닌가?

 

금요일 저녁에 도무지 운전할 수가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어둡고 폭우에 앞을 분간할 수가 없을 지경이어서 고속도로에 들어갔다가 충남 금산에서 하룻밤 묵었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나 고속도로에서나 물이 고이거나 넘쳐서 경차바퀴는 빠지면 사고가 날만한 구간을 몇 번 경험했다. 어찌나 아찔한지 딸이 놀라서 손잡이를 꼭 잡고 말했다.

 

"엄마, 우리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차바퀴 큰 것으로 다시 사야겠어."

 

그 정도 비가 내려도 물에 빠져서 곤란해지지 않고, 목숨을 위협받지 않을 만큼 치수하려고 확보한 세금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하다. 최근에 다녀온 남해군 어떤 사찰 옆에 물도 없는데 엄청난 규모로 계곡 정비를 해놔서 넘치게 돈 썼다고 우리가 말한 적 있는데, 차라리 그게 낫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빗물이 넘쳐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무고한 생명이 죽어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안전장치와 대비 외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은 얼마나 위험한지..... 바퀴 큰 자동차, 비 새지 않는 집, 물이 불어나도 절대로 빠지지 않을 높은 지대에 살아야 할.....

 

잠시 피해서 비켜가거나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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