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병원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곳에서 딸과 10초 정도 대면하고 헤어졌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딸이 보고 싶어서 선약 없이 들렀다. 점심을 늦게 먹은 줄 아는데 저녁 같이 먹자고 조르긴 애매한 시각이었다. 도서관 앞에서 기다리다가 필요하다고 주문한 물건 사둔 것을 건네준다는 핑계로 잠시 나오라고 불러냈다.
평소와 달리 예쁘게 화장하고 귀엽고 편한 차림으로 도서관에서 쪼르르 나왔다가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만 봐도 행복했다. 매일 통화하고 최근에 자주 봐서 그 정도만으로도 섭섭하지 않았다. 조만간에 핑계 만들어서 또 보러 오면 되니까.
혼자 집에 가봐야 밥 먹는 게 뻔하니까 그 동네에서 밥 한 그릇 먹고 우산 들고 맨발 걷기를 했다.
저 자리에서 맨발 걷기의 중요성을 알려주셨던 B.K선생님의 환하게 웃는 모습과 낭랑한 목소리가 그대로 떠올랐다. 어떤 날은 저곳에서 산책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날도 있었다. 각자 다른 도시에서 다른 직장에 다니면서 같은 시간에 저런 곳에서 마주칠 확률을 생각하면 우리의 관심사에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거다.
S.K 선생님을 작년 5월 연휴에 울산 대왕암공원 화장실에서 마주친 인연에 비하면 조금 약하지만, 우린 삼천포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던 거다. 두 분과 작년에 가끔 어울려서 밥 먹고 짧은 여행이나마 함께 다녀서 잘 견뎠다.
막국수 먹기엔 촉촉한 날씨여서 연못 둘레길에 있는 그 음식점에서 잘 나간다는 옛날 육개장을 한 그릇 먹었다. 딸이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서 Msg 맛이 여운으로 남아서 한 번 먹은 것으로 족하다고 했더니, 제주 여행에서 함께 먹은 서귀포 국밥집 이야기를 꺼냈다. 건더기 푸짐하고 Msg 맛이 살짝 나도 그 집 음식은 비교적 괜찮았단다.
딸은 여행지에서 맛집을 데려가면 엄청난 기억력을 발휘한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맛집을 알아내서 체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딸과 함께 여행하려면 맛집을 기준으로 여행 코스를 짜야하니까.
가을에 삼천포 선영 씨 몸 다 풀고 가게 문 열면 베트남 음식 먹으러 꼭 함께 가기로 했다. 음식을 핑계로 우리 모녀를 몇 번씩 동행하게 해 준 고마운 선영 씨가 낳은 막내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다. 고향이 베트남인 선영 씨 덕분에 내가 베트남 음식도 즐기는 딸의 모습을 보게 됐다. 설득할 수 없는 딸의 선입견을 단 번에 깨준 고마운 분.
강주연못엔 올해에 연꽃이 거의 피지 않았다. 연꽃 축제를 한다는데 꽃이 피지 않았고, 꽃대도 올라오지 않았다.
말없이 오랜 세월 버틴 큰 나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숙연하고,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움직일 수 없다는 점에서 배경처럼 여기는 대중의 인식은 잘 알지 못하는 생명체에 대한 일종의 평가절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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