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태로 출퇴근은 어떻게 했을까 싶다. 눈을 반짝 뜨고 앉아서 버티는 것도 힘든데 시외로 출퇴근하고, 종일 긴장한 상태로 이런저런 일을 한다. 지금 내 상태로 봐서는 누군가 꼬챙이로 전신을 조종하는 도구에 나를 꽂아서 이리저리 조종한 게 아니고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매일 하는 거다.
적당히 해도 되는데 할 때마다 너무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는 힘 없는 힘 다 뽑아내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퇴근하는 즉시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는 상태에 빠지는 거다. 오늘은 출근 준비할 시각에 깼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건 반드시 끝내야 하는데 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긴장시키지 못하는 머리가 방해가 된다.
이렇게나 몸이 힘든데도 억지로 견디면서 일을 해야 할 만큼, 내게 넘치는 일을 강요하는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다.
지금 정신 차리고 그 일을 당장 끝내라고 종용하기엔 내 몸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자고 일어나서 문득 어느 순간에 보면 몸 곳곳에 새로운 자리에 멍이 몇 개씩 들어있다. 어디서 어떻게 부딪혔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종일 힘에 부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내 몸 어딘가는 계속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모르는 척하며 지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쉽게 멍이 들고, 또 멍이 든다. 잠든 사이에 누가 내 몸 곳곳을 두들겨 패기라도 한 것처럼.
퇴근하고 씻을 때는 너무 피곤해서 살피지 못하던 곳을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보면 그제야 눈에 보인다. 이 일을 마감 날짜 전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눈이 잘 안 떠져서..... 이럴 땐 조금만..... 조금만 더 쉬고 싶다. 이 압박감과 격렬히 대치 상태로 잠들지도 못하고 눈은 계속 감기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흘려버리고 있다. 그냥 한숨만 푹 자면 편안해질 것 같은데 낮에 한숨 자는 것도 이렇게 어려울 만큼 매일 내 몸을 지독하게 부리며 사는구나.
의무감 없이는 깨울 수 없는 몸이 피로하다고 아우성치는데 진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억지로 일하라고 내 속에서 누군가 뒤통수에 대고 잔소리를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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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가장 더울 시각에 채소 튀김을 만들었다. 가지, 팽이버섯, 당근, 고구마까지 튀겼다.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한 건 의지가 느슨해진 순간에 동물적으로 하고 만다. 팽이버섯은 마른 가루만 입혀서 튀겼어야 했다. 튀김옷이 너무 무거웠다. 오래 둬서 수분이 적어진 고구마는 튀겨도 맛없어.
튀김 반죽에 진간장을 살짝 타서 쓰는 방법으로 하니까 가지는 매번 맛있다. 튀김옷을 아주 가볍게 해서 쌀가루 혹은 찹쌀가루를 입혀서 인삼 튀김 만들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책상다리도 튀기면 맛있다는데 뭣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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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한숨만 더 자고 싶었는데 결국 한순간도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눈을 혹사하며 빈둥거렸다. 저녁엔 꼭 일해야 한다. 이렇게 다짐이라도 해야 내일은 딸과 함께 하루 놀 수 있다. 저녁에 공연 끝나면 기숙사로 돌려보낼지 이 복작복작하게 어질러진 집에서 하루 자고 가라고 붙들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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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마트 문 닫는 날이라고 해서 오늘 과일이라도 좀 사다 놓을까 하다가 밖에 나가기가 싫어서 인터넷으로 장보고 오후에 배달해 주는 것 받기로 했다. 빈속에 배고플 때여서 탄수화물 종류만 장바구니에 담았다. 동네 빵집도 내일부터 며칠 휴가라고 해서 빵을 사놓으려고 앱을 열어서 몇 번이나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그대로 앱을 끄기를 반복했다. 이미 오전에 저질러 놓은 게 오후에 도착할 텐데 겹으로 사고(?)를 칠 수는 없는 거다.
아침에 체중 좀 빠졌다고 안 먹으면 더 좋을 종류의 음식만 찾는다. 이 정도로 피곤할 땐 멍청해진다. 피곤할 땐 그냥 쉬게 나를 좀 내버려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