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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올해 첫 냉면, 마지막 냉면

by 자 작 나 무 2023. 8. 23.


퇴근길에 너무 지쳐서 집에 와서 쓰러져 잠들기엔 마음이 근육통 앓듯이 뻐근해서 딸에게 전화할까 말까 두어 번 망설이다가 그냥 퇴근했다.

딸이 꼬맹이였을 때부터 같이 다니던 냉면집 생각이 문득 났다. 피곤하기도 하고 괜히 주중에 냉면 한 그릇 같이 먹자고 하기가 어쩐지 머쓱해서 전화하려고 두 번, 세 번 창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첫 번째 갈림길 전에 마침 딸의 전화가 왔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냉면 먹으러 가자고 전화하려다가 망설인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은 비 온다며 오늘 같이 육전 올린 냉면을 먹기로 했다. 초죽음 직전이었는데 딸이 보고 싶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마침내 여름에 함께 먹은 첫 냉면, 이제 곧 여름도 끝날 즈음에 살얼음 띄운 냉면을 먹었다. 다시 우리가 그 냉면집을 찾을 일 있을까 싶은 마음에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인듯, 당장 쓰러져 생을 마감할 준비라도 하듯, 설익은 듯 질긴 면을 제대로 끊어 먹기도 힘들었던 날. 함께 했던 기억을 후루룩 삼켰다.

이제 여긴 이름만 남았다. 페이드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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