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사흘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사실이 마음의 여유를 부르는 날이다. 몸이 가뿐하게 나았더라면 울산 대왕암공원 둘레길을 걸으러 갈 작정이었다. 체력이 되는 대로 경주도 들렀다가 월요일에 집에 돌아오는 일정을 상상했었다. 체력 미달로 상상으로 마감했다.
날은 선선해서 걷기엔 좋겠지만 햇볕이 나지 않고 종일 흐린 데다가 이번에 코로나 19에 걸린 뒤에 체력이 쉽게 회복되지 않아서 이 상태로 시간 난다고 여행을 떠날 것은 아니다. 충분히 쉬어야 다음이 있을 것 같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서 마시지 않은 지도 꽤 됐다. 그만큼 내 몸 상태가 오래 좋지 않았다는 거다. 그냥 끊을 수 없는 마지막 보루 같은 커피를 계속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휴일엔 커피 한 잔 꼭 마시고 싶어서 밖으로 나섰다. 동네에서 싸고 맛있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포장해서 공원에서 마실까 하다가 이왕에 차려입고 나왔으니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얼마 전에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스타벅스 매장 하나를 꾸미고 있는 것을 본 것이 생각났다. 프랜차이즈 이름값에 자리가 좋으니 문전성시를 이룬다.
선물받은 쿠폰이 있어서 거기에 가야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혼자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았다. 주변음을 삭제하는 이어폰을 꽂고 가을 분위기 나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종이와 펜을 들고 나오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로 감정이 꿈틀거렸다. 가을이다.......
마트에 들러서 단백질 섭취할 식자재를 두어 개 사서 집에 던져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바닷가 산책길에 나갔다. 조금 걷다 보니 혼자 걷는 걸음이 금세 지친다. 걸으면 힘이 나는데 아직 그 정도로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서 몸이 힘든 모양이다. 바다 건너 섬으로 향하는 배나 큰 돛을 펴고 바람을 타는 요트를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낮에 갔던 카페가 있는 동네와 그 바닷가 산책길은 꽤 떨어진 동네인데 그 카페에서 마주친 사람이 나를 알아본 듯이 쳐다본다. 남자 둘이 창가에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았길래 다른 자리에 앉았다가 그들이 자리를 옮긴 뒤에 그 자리에 내가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참 좁은 동네에 살다 보니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도 하루에 두세 번씩 우연히 마주친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인 그 산책길을 걷는다. 나는 풍경이 되어 그 자리에 앉아서 한참 바다와 섬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오후였다면 조금 더 충전해서 어디론가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짙은 구름에 가려서 아쉬웠다. 산책을 마무리하고 주차장 근처까지 갔을 때 일기예보 앱에서 본 것처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관광객 놀이를 시작했으니 저녁도 동네 맛집에 들러서 먹고 들어가야겠다. 오후 휴게 시간을 마치고 5시 반에 저녁 장사를 시작하는 국밥집에 도착했을 때 6시가 되기 한참 전이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니 오늘 준비한 음식이 매진되었다고 했다. 단골이라 나를 알아보는 점원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
두어 번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집이 있지만, 집에 들어가서 혼자 밥 먹는 게 싫었다. 혼자 가서 밥 먹을 수 있는 맛집이 흔하지 않다. 다음은 튀김덮밥집. 가게가 좁아서 확장 공사한다는 안내를 붙여놓고 한동안 장사를 하지 않던 집인데 확장 공사를 해서 그런지 마침 대기표 받지 않아도 들어갈 한 자리 정도는 있다.
튀김덮밥을 혼자 먹고 있는데 내 옆 자리에 혼자 여행 온 예쁜 여자가 앉아서 나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나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참았다. 너무 심심해서 같이 놀자고 옷자락 붙들게 될 것 같았다. 저녁 먹고 어디로 갈 것인지 묻고 차라도 한 잔 마시자고 하고 싶었고, 다음날 어느 코스로 여행할 건지 물어서 쫓아가고 싶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외롭고 심심한 토요일이었던 거다.
백팩 하나 들고 온 그 긴 머리에 예쁜 여자와 오늘 또 우연히 마주친다면 커피 한 잔 같이 마시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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