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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자정 넘어 가지를 튀겼다

by 자 작 나 무 2023. 11. 12.

간밤에 몇 번이나 깨는 바람에 오전은 이불속에서 뒤척이다가 지나갔다. 오늘쯤 점심을 같이 먹자고 연락해야 할 것 같은 친구를 몇 번 떠올렸다. 주말에는 남편과 가족을 챙겨야 할 테고 따로 계획이 있을까 싶어서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시간 날 때 밥 같이 먹자고 지난주에 내가 전화했으니, 친구가 시간 내서 연락 줄 때까지 기다린다.
 
혼자 늦은 아침을 먹고, 책상 위에 보란 듯이 올려놓은 카스텔라 상자를 열어서 입맛 당기는 대로 잘라서 먹었다. 그러고도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서 가지튀김 하려고 가지를 씻어서 자르고 얼음물에 튀김옷 반죽까지 했다. 그러던 중에 어쩐지  뒤통수가 간지러워서 휴대전화를 켜보니 놓친 전화와 카톡이 와있다.
 
오전에 몇 번 떠올린 그 친구가 마침 우리 집 근처까지 와서 밥 같이 먹자고 연락한 거다. 가지튀김하려고 기름 온도까지 올려놨는데 불 끄고 바로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그 친구의 지인 가게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고 공원에서 산책하며 그간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생각을 한 번 더 하게끔 편안하게 말을 건네주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둘이 김해로 달렸다. 오후 세 시 넘어서 나서기엔 너무나 우발적이고 돌아올 밤길을 생각하면 일종의 사고 같은 걸음이었다.
 
왕복 200km를 달렸다. 자정 전에 무사히 집에 돌아오긴 했지만, 가지튀김 반죽 그릇에 썰어서 마른 가루 입힌 가지를 그대로 담가놓고 간 것을 잊었다. 점심만 먹고 금세 집에 돌아와서 쉬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나간 거였다.
 
이틀 연가 쓰고 엊그제부터 부모님 모시고 형제자매들까지 다 모여서 가족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길 위에 서게 됐다. 내가 이사하고 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그간 가끔 주말에도 시간 내서 나를 불러내서 밥을 같이 먹어준 고마운 친구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직장 생활하면서 알게 돼서 직장에서 생긴 일도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근무지를 옮겨 다녀도 변함없이 나를 찾아줘서 고마웠다. 어디에 끼지도 못하고 혼자 내 할 일만 하고 내 길만 걷던 나를 불러 세워서 같이 가자고 청했던 그날부터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우리가 꽤 오래 종종 만나서 밥을 먹었다는 기억을 오늘에야 끄집어내서 정리했다. 
 
밤참 먹지 말고 뱃살도 빼라고 진지한 조언을 해줬는데 자정 넘은 시각에 낮에 장만해 놓고 나간 가지를 튀겨서 한 개 맛보다가 한 접시를 다 먹고 말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간 그 친구와 좋은 시간을 수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잊지 않고 나를 챙겨줘서 고마웠다. 내가 아는 그대 가족 모두 빠짐없이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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