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일찍 잠든 바람에 새벽에 다른 날보다 일찍 깼다. 간밤에 딸이 보낸 메시지가 있다. 학교 친구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다. 내가 잠든 사이에 지인이 책 선물을 보내신다는 메시지까지 남겨놓으셔서 뭐라고 답을 하고 인사도 드렸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무감각한 상태에서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퇴근하고 멍하니 집으로 갔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서 딸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갑자기 추워져서 필요하다는 외투를 챙겨서 건네주고 기숙사 앞에 서서 몇 마디 나누다가 차를 빼야 할 상황이어서 그대로 헤어졌다.
마음이 허전해서 그런지도 모르고 배고파서 그런가 해서 혼자 밥 먹을 수 있는 식당에 가서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 수제비와 칼국수를 섞은 게 칼제비라는 걸 작년에 처음 알게 됐다. 수능 전날이어서 그런지 백화점에 손님이 뜸하다. 붉은 고추를 갈아 넣어서 깔끔하게 담근 생김치와 칼제비 한 그릇 맛있게 먹고, 가게 몇 곳에 들러서 그곳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직원 붙들고 친한 사람처럼 잡담을 나눴다.
이렇게 마음 풀어놓을 곳 없는 사람이었구나.....
어색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이야기한 것도 이상했고, 낮에 일에 치어서 아픈 허리를 잠시 쉬게 할 요량으로 운동장 한쪽에 주차한 차 안에서 잠시 앉아서 쉬면서도 몸이 피곤하니 사소한 일에 눈물이 왈칵 올라와서 당황스러웠다. 평소와 조금 다른 반응이다. 전조 현상처럼 느껴졌다.
저녁 8시 마감 시간 직전에 백화점에서 나오는 길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운전대를 잡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통곡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머리가 아프다고 느껴진 뒤에 내 감정이라고 하기엔 이상할 정도의 감정이 느껴져서 당황스러웠다.
시내에서 딸이 사는 기숙사까지 한참을 그렇게 목놓아 울면서 운전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 삶에 이 정도 속내를 드러낼 친구는 너뿐이라고...... 나를 좀 이해해 주고, 안아달라고 부탁했다.
딸이 편의점에서 물 한 병을 사 와서 내밀었다. 눈 뜨고 새벽에 가장 먼저 본 것이 제 친구 부모님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여서 내가 무의식 중에 그와 관련한 다양한 생각을 해서 감정이 그랬을 거라고 진단해줬다. 듣고보니 그러하다. 제 친구 부모니까 내 또래다.
*
공감받을 수 있는 상대에게나 말하는 거다. 어디에 풀어놓아도 나를 이해해 줄 수 없고, 공감해 줄 수 없는 이에게 하는 말은 메아리 없는 허공에 돌팔매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 입장을 헤아려줄 내 편 하나가 필요한 거다. 딸은 자식이니 아무리 친해도 한계가 분명히 있다. 내가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있다.
그래도 내가 부모니까 그렇게 속 없는 사람처럼 우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간혹 가슴이 갑자기 터질 듯 아픈 날엔 저 몰래 잠든 뒤에 밖에 나가서 울었다. 때론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삼켰다. 23년 만에 처음으로...... 서글픈 존재의 아픔을 큰소리로 드러냈다. 이제 어쩔 수 없는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 할 때인가 보다.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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