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0
간밤에 꽃게 된장국을 끓여놓고, 오늘 아침에 새우전, 대구전을 부쳤다. 무나물 한 가지만 해도 딸이 좋아하는 음식만 만들어서 늦은 아침 식사는 기분 좋게 끝났다.
어제 배달해 준 가구 한 가지를 조립하느라고 힘 좀 쓴 딸은 드러누워서 밤낮없이 잔다. 나는 겨우 몸 좀 추스르면 해야 할 집안일과 직업으로 해야 할 일이 만만찮아서 아직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서 벌써 끝났어야 할 서류 작업이 늦어져서 밥 먹고 숨쉬기 외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상태로 한 달 이상 앓았다.
오래 쓰던 낡은 책상을 버리고 와서 딸내미 방에 둔 낡은 책상 하나가 전부다. 집이 아무리 좁아도 내 책상 없이는 내 삶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날 정도로 내게 책상은 중요한 물건이다. 찬찬히 둘러보고 잘 골라서 새 책상을 하나 들이기로 했다. 그전엔 내가 딸 방에 머무르면서 이 일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직 거실엔 정리하지 못한 물건이 수두룩하다. 기숙사 생활을 오래 한 딸은 우리 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물건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서 간혹 몇 가지 물건 정리를 하고는 내버려 둔다. 일하는 버릇이 들지 않아서 그런지 영 일머리는 없다. 나도 손이 빠르고 야무진 편은 아니지만,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질 것 같아서 몇 가지 나서서 하다가 오른쪽 어깨를 영 못 쓰게 돼서 접었다.
타이핑할 수 있는 기운도 아꼈다가 생기부 쓰는 데에 집중해서 써야한다. 이래서 다들 담임을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구나 싶다. 일주일에 고작 한 시간 들어가서 수업하는 게 전부였다. 3학년 전담 수업하면서 관찰할 기회가 드문 그 반 학생들이 활동하고 보고서도 제대로 써서 내지 않는데 내가 무슨 수로 활동 내용을 평가해서 쓴단 말인가.
고향을 떠나온 소회는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런저런 감상에 빠지면 일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명절에 밥 먹으러 오라는 친구집에 딸내미 데리고 가서 같이 밥 먹고 얼굴 보고 오는 게 전부였지만, 그조차 하기 어려운 먼 동네로 이사해서 이제 정말 단둘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착잡할 것 같아서 딸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해주고 정리하고 이제야 책상 앞에 앉았다. 이미 피곤하다.
딸이 깨서 먹을 음식 준비를 해놓고 침묵 속에 앉았다. 어느 계절이나 샤워하고 나면 추워서 벌벌 떨던 그 넓기만 하고 허술하고 추웠던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현실 같지 않지만, 우선 그 자체만 생각하고 감사하기로 한다. 오늘은 내 감정이라도 잠시 옮겨 쓸 기력을 얻었으니 그 사실에도 감사해야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많은 것을 잃고, 부족하고 불편한 것에 아우성칠 여력도 없다. 새롭게 얻은 것이라도 바로 보자.
지금 이 시점에선 다음달부터 생계유지를 어떻게 할지 걱정해야 하는데, 때가 되면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라 믿는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더라.
빨리 이 상황이 정리되어서 마음 편하게 딸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나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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