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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2.26

by 자 작 나 무 2024. 2. 26.

22024-02-26

 

2월 23일, 졸업식

초, 중, 고, 대학 졸업식 완료. 네 번의 졸업식 중에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딸의 학구열이 남다른 편은 아니어서 더 공부시켜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22일 저녁에 학교 근처에서 자고, 부슬비 내리는 오전에 졸업 사진 찍느라 분주한 학교에 도착했다.

 

날이 흐려서 커튼을 열어도 어두운 호텔에서 거울 너머로 보이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왈칵왈칵 감정이 올라오려는데 전화가 온다. 출근하시지 않고 내 딸 졸업을 축하해 주러 굳이 오시겠다는 강 선생님을 말리다가 결국 만나기로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얼굴 보고 대화하기도 어려울 터라 점심이라도 같이 먹기로 했다.

 

이사하기 전날에도 저녁에 집에 찾아오셔서 엉망인 내 살림살이를 어쩌지 못해서 엉거주춤한 나를 위로해 주셨고, 이사하는 날 이른 아침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내 손에 김밥이 그득 든 봉지를 건네주셨다. 우리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기에 이렇게도 애틋하게 나를 챙겨주시는지.....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당연한 듯 주는 대로 받고 소화하는 내가 의아할 정도다.

 

혼자 딸 키워서 대학 졸업까지 시키느라 고생했다며 건네주시는 인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뜨거운 뭔가를 꾹 눌러 삼키게 한다. 이사하기 전날엔 강 선생님을 부둥켜안고 서럽게 엉엉 울었다.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울었다.

 

고향에서 맺은 길고 깊은 인연은 그곳을 떠난다고 쉽게 잊히거나 정리되는 관계가 아니다. 너무나 익숙한 바다가 그립듯, 그들도 바다처럼 가슴에 그득하다. 가끔이라도 달릴 수 있는 날 기꺼이 그곳으로 달리게 할 인연이 몇몇 있어서 감사하다. 내가 그래도 아주 헛살지는 않은 모양이다. 

 

2월 26일

*

모닝콜이 울려도 누워 있을 수 있는 평일 아침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안도감보다는 다시 해야 할 일이 신경 쓰여서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정말 오랜만에 멍 때리기 용 드라마를 봤다. 꽤 오랫동안 드라마를 볼 정도의 힘도 시간도 없었다. 졸업식 전후로 딸과 함께 집이 아닌 곳에서 자면서 TV를 보게 됐다. 

(집에 TV가 없었는데 전기요금 정산하면서 내역에 TV 수신료가 매달 있었다는 게 갑자기 생각나서 괘씸하다.)

 

*

이사한 집에 물건 정리를 내가 하지 않아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때마다 딸에게 묻는다. 딸도 물건을 찾지 못해서 둘이서 온 집을 뒤진다. 라텍스 장갑을 찾다가 포기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짐이 거실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주에 비 오는 날 아침 출근길에 턱에 걸려서 넘어져서 또 왼쪽 무릎이 깨졌다. 다리에 힘도 없고, 뼈가 약해져서 쉽게 다친다.

 

여전히 다리가 아프지만, 나를 가만히 누워서 쉬게 해 줄 사람은 없다. 급한 일부터 해내느라고 밀린 많은 일이 내 손을 기다린다. 며칠이라도 쉬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너무 힘들게 내 몸을 돌리는 선택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하지 않아도 하루가 돌아간다면 손 놓고 쉬어야 마땅하다. 이론적으론 그렇다. 현실은 아주 죽을 정도로 아픈 게 아니면 쉴 수 없다.

 

집안 살림살이 정리 정돈, 재배치, 최적화 등등 자잘하게 팔을 많이 써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어깨가 욱신거린다.

 

취업 재수생이 된 딸은 아직 새 책상이 집으로 배달되지 않아서 침대에 눕거나 앉아서 뭔가 한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겠다더니 씻고 밖에 나가기가 귀찮단다. 그럼 남은 짐 정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제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하라고 시키는 게 싫어서 어지간하면 내가 해야 편하다. 

 

*

정장 바지에 단추를 달면서 초점 맞추기 어려운 내 눈이 불편하게 느껴져서 잠시 숨을 멈췄다. 점점 이렇게 불편한 것에 적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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