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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2.27

by 자 작 나 무 2024. 2. 28.

2024-02-27

A: 내가 그렇게 몇 번이나 말했는데 너는 그렇게 눈치가 없어?

B: 뭘 어쩌라는 건지 콕 집어서 말해 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무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키워드만 우회해서 말했더니 딸이 모른다. 모르는 척하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늦은 아침을 먹던 시간에도 제 방에서 나오지 않기에 나도 모르는 척하고 방에 가만히 있었다.

 

끝내 꿈쩍도 않아서 한 마디 했다가 내 감정이 그간 쌓아둔 말을 해버렸다. 어제는 억울한 듯 울며 열심히 말대답 하더니 오늘은 내가 일방적으로 몰아세워서 입을 다문다. 나 너무 아프고 힘들다고 그렇게 말해도 눈치가 그렇게 없느냐고 소리 질렀다. 집에서 못한 말을 둘이 탄 차 안에서 막 질렀다. 내가 핸들이라도 잘못 돌릴까 봐 딸이 긴장해서 말대답을 하지 않아서 도서관에 도착하기 전에 부딪힘은 그렇게 일단락했다.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아느냐는 딸의 말에 나는 어떻게 매일 아프다고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고 매번 이야기하느냐고 말했다. 두어 번 그렇게 부딪혀야 의사 소통하는 길이 트인다. 나도 제 속을 어찌 알 것이며, 저도 내 속을 어찌 알겠는가.

 

도서관 두 곳에 들러서 대출증 받고, 마트에 들러서 장 보고 들어와서 식탁에서 캔맥주 하나를 따서 둘이서 나눠마셨다. 옷 정리를 잘못해서 입고 나갈 바지를 내가 도무지 찾을 수 없게 된 상황이 누구 탓도 아닌데 내가 그걸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내 물건도 찾지 못해서 열이 확 오르고 속이 상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한 시간이면 할 일을 서너 시간 꼼지락거리며 했다.

 

나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뭘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딸에게 눈치껏 내게 필요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표현했다. 말하지 않고 혼자 온갖 서운한 감정을 쌓는 것보다 말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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