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
혼자 살 인생이라면, 너무 애쓰지 말고, 두리번거리지도 말고 묵묵히 오래 잘 버틸 수 있는 나만의 인생 프로그램이나 잘 짜야겠다.
숲에 생기가 돌 즈음부터 풍성해졌다가 스러지기 전까지 최대한 자주 찾아서 생기를 얻는 일, 머리가 더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꾸준히 뭔가 찾아서 읽는 일, 정신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사람과 교류하는 일. 더 건강해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
어제 베어트리 파크에 오가는 길에 이 동네를 끼고 처음 가보는 길을 달리면서 딸과 나눈 대화
"어차피 이 몸은 우리가 이 세상을 뜰 때 쓰임이 다하면 사라지는 거잖아. 뭔가 연속되거나 이어지는 것이 있다는 가정하에 그게 이 몸에서 떠날 때 이 몸은 스위치 꺼지는 부품 같은 거지?"
딸이 확인 삼아 내게 그리 물었다.
"그렇지. 몸은 그렇게 잘 쓰면 되는 거니까 잘 먹고, 잘 쉬고, 살살 잘 다뤄야지. 몸이 나의 전부인 듯 떠받들고 모시고 갈고닦을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네."
어떤 생각도 '이게 옳다 이것이 진리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질문할 때에 해당하는 말과 관련된 내 생각을 정리해서 알려줄 뿐. 채근하지 않는다. 얼마큼 성장하거나 그건 내 몫이 아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믿는다. 어떤 완성된 지점을 지향해서 그곳만 보고 달리는 인생이 아니다. 천천히 걸으며 낮에 내리쬐는 볕을 쬐고 바람을 느끼고 숨을 쉬는지도 모르고 그냥 숨 쉬며 존재하는 것. 내 인생은 그런 지점을 지나고 있다.
젊은 시절에 훅 끌리거나 신경 쓰였던 것에 애착하지 않고 담백하게 한 번 머금었다가 마감하는 나를 관찰하는 나로 존재하는 것. 무게 없는 삶. 가볍고, 복잡하고 흩날리는 봄날 꽃가루를 흠뻑 뒤집어쓰게 되어도 잠들기 전에 씻을 수 있으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먼지는 뒤집어써도 울 일이 아니다.
운동장에서 날리는 먼지를 많이 마셔서 이틀은 기침도 꽤 하고 목이 아파서 음식을 삼킬 때마다 통증을 심하게 느꼈다. 그조차 잊고 딸과 함께 5월의 숲을 거닐다보니 잊힌다. 집에 돌아와서 잠들기 전까지 얼마나 몸이 힘든지 잊고 있었다. 내 삶에 주어지는 통증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겪으면서 잊히는 것으로 처리하는 모양이다. 나를 보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하는 중이다.
작년엔 극심한 스트레스로 자기 파괴적인 프로그램을 돌리는지 계속 살이 빠지고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 올해는 어떤 지점까지 돌아와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점점 흐리게 보이고 희미하게 생각하는 게 도태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것엔 극렬히 저항해 보기로 한다. 충분히 비교 가능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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