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9
진짜 해야 할 일은 하기 싫어서 컴퓨터 켜놓고 종일 하는 둥 마는 둥 며칠째 붙들고 있다.
딸이 내일 친구 만나러 나가는데 그간 살 빠져서 입을 옷이 없다며 옛날에 사서 살쪄서 입지 못하게 됐던 바지를 꺼내서 고쳐달라고 했다. 바지 길이를 조금 자르고 단만 올려서 박음질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십수 년은 한 번도 꺼내보지 않은 것 같은 미싱을 돌리는 일이 걸렸다.
시침질한 바지를 놓고 실도 어떻게 끼워서 돌려보니 바늘이 돌아가지 않고 기계가 헛돈다. 조금 이따 생각해 보니 북실 감는 기능 쪽으로 선택한 상태여서 그런 거였다. 잠시 버벅거리다가 바지를 금세 뚝딱 고쳤다.
하기 싫은 건 열흘이 걸려도 한 달이 걸려도 못하고 버벅거리고, 할 일이 생기면 바로 잘 해낸다. 이런 걸 어떻게 배웠느냐고 딸이 묻는다. 중고생 때 가정, 가사 책에서 글로 배웠다. 기계 원리를 이해하면 다루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중고 시장에 팔아버릴까 생각했던 미싱이 오늘 제대로 쓰였다.
딸내미 바지를 몇 개 고쳐야 할 모양이다. 실을 바늘에 끼우는 것도 혹시 안 되면 딸에게 시킬 요량이었는데 아무 문제 없이 바늘귀도 잘 낀다. 하기 싫은 일을 붙들고 빨리 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며 늙었다는 핑계를 대려고 했는데 의지 문제였다. 그냥 하기 싫은 거다. 해야만 하는 일이니 마감 전에 끝내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