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9
통장에 남은 잔고가 이달 중순 카드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딸이 불쑥 가고 싶다고 말한 제주도에 다음번에 가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여태 제주에서 쓴 비용을 떠올리면 이번 여행은 제법 알뜰하게 다녀왔지만, 이번 달부터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가오는 현실이었다. 여윳돈이 절실해지는 시점이었다.
여태 9월엔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으니 이때 잠시 숨을 고르며 여행을 다녀오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매번 카드로 먼저 쓰고 월급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스쳐가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이번 달에 쉬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여윳돈으로 산 주식은 끝없이 추락했다. 그걸 손절하려니 손해가 너무 커 결심이 필요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주말을 보내며, 장이 열리면 가장 적게 손해를 본 종목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달 돈 걱정은 그렇게 잠시 덮어두기로 했다.
푸른빛의 주식들 속에서 한 종목을 골라, 장이 시작되고 30분 내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동을 몇 번 경험한 후, 더는 계산하지 않고 팔아버렸다. 내가 판 후, 주가는 계속 올랐다. 그나마 사들였던 가격에 비하면 여전히 마이너스였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팔고 나니 주식이 오르는 거다. 그걸 일부 정리하고 나니 다음 달 생활비는 어느 정도 해결된 듯했다. 이제는 마음 편히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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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 내내 왼쪽 어깨를 비롯한 몇 군데에 깊숙한 통증이 계속해서 찾아와 괴로웠다. 돌아와서는 토요일 오전, 병원에 가기에는 어정쩡한 시간이라 늦잠을 조금 더 자고, 작년에 비슷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처방받은 약을 꺼내들었다. 그때 약이 종류별로 너무 많아 손도 대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이틀 정도 그 약을 복용하자, 마치 몸에 뿌리박힌 근육통과 신경통 같은 염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제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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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콩을 불려놓고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직장에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집에 와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았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 사이 내가 먹겠다고 사둔 현미와 현미 찹쌀은 도정한 지 오래되어 색이 변해버렸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였다.
병아리콩을 그냥 삶아 먹으려니 손이 많이 가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샐러드에 넣어 먹는 것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오늘은 밥에 섞어 먹기로 했다. 현미를 조금만 씻어 불려두고, 쌀과 병아리콩을 반반씩 섞어 밥을 지었다. 불린 현미와 병아리콩으로 지은 밥의 식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당분간은 병아리콩을 섞은 현미밥을 맛있게 먹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