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9
2013년 여름 이후, 나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딸에게 일주일짜리 여행을 약속했다가, 그다음엔 4주, 그리고 마침내 석 달짜리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건강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유럽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여행이었기에, 저축은 필수였고, 나는 적어도 7년마다 한 번은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다시 7년이 되던 해,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와, 그 기회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후로는 딸이 바빠져서 시간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딸과 함께하지 않는 여행은 어딘가 허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권이 만료된 후에도 갱신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고, 이제 와서야 필요한 순간이 오니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후회되었다.
내가 사용하던 기내용 가방은 잠금장치도 없고, 크기도 어정쩡했다. 그러던 중, 딸이 이번 여행에는 자신의 여행가방을 쓰라며 건넸다. 어차피 화물칸에 실릴 것이니, 기내용 크기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안에 감춰둔 여행의 설렘이 가방 크기만큼 커져버린 것 같아서, 딸에게 들킨 기분이 들었다. 살짝 머쓱했다.
예전에 지인이 여행 일정에 대해 쓴 글을 읽었을 때, 몹시 지친 어느 날, 큰 여행 가방에 실려서라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문득 떠올랐다. 다행히 이번에는 여행 가방에 담겨 화물칸에 실리지 않고, 함께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