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6
11월에 취업 시험을 앞둔 딸은 수험생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계획적인 외출은 잘 못한다. 마음이 무거운 까닭일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문득 던지는 여행, 외식에 관한 말을 그냥 흘릴 수가 없다. 그 순간만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며칠 전에 맛있게 먹고 온 조치원 3대 돈가스집 중에 '이바돔' 돈가스가 먹고 싶단다. 다음에 먹자고 미루지도 못하고 바로 준비하고 모시고(?) 나간다. 나중은 없다.
와우~ 그런데 오전 장사에 준비한 재료가 소진되었다는 안타까운 알림이 붙어있다. 월요일인데..... 명절 전날 장사하는 음식점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다른 돈가스집에 가기도 애매하다. 30분 이상 시외로 달려서 나왔는데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아침을 굶고 나와서 배도 고팠다.
"여기서 곰공원이 좀 가까운데 거기 가서 밥 먹고 산책 좀 할까?"
이바돔 돈가스를 전에 사 먹었을 때 돈가스 한 개만 주문해서 파스타를 놓고 돈가스를 나눠서 먹은 바람에 맛있는데 만족스럽게 먹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정말 너무 맛있어서 그 맛이 아른거려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조치원에 나온 덕분에 내가 가고 싶은 공원에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마음에 부담이 돼서 차마 어디 놀러 가자는 말도 못 하거니와, 그게 통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나온 김에 뭔가 하자고 하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니까 덥석 물 수밖에. 사람 많을까 봐 신경 쓰이는 척했지만, 내 계산은 명절 전날이어서 한산한 게 아주 좋을 거라고 꼬셨다.
입장권 끊고 입구에서 사진 한 장 찍은 뒤에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스몰 웨딩도 하는 곳이어서 계단을 예쁘게 꾸며놨다. 며칠 내내 방구들만 지고 있을 참이어서 답답해질 것 같아서 미리 답답하려던 차에 갑자기 딸과 함께 졸지에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니 기쁠 수가 ~
간단하게 한 끼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일어섰다. 붐비지 않아서 기분 좋게 밥 먹으며 수다도 떨고 이런 곳에 사진 찍으러 나올 때처럼 예쁜 옷을 입고 나오지 않아서 아쉬울 수도 있는 딸내미 기분을 계속 올려주려고 나름 애썼다.
봄에 왔을 땐 조금 더워서 걷기 싫어하는 딸 눈치 보느라고 스쳐 지나갔던 구역도 다 구경했다.
우린 조금 색다른 식물이나 나무를 보면 감탄사를 쏟아놓으며 잘 자란 나무를 칭찬하기도 하고, 자세히 살펴본다. 소나무 몇 그루 있는 게 뭐 볼 게 있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꽤 구경거리다.
이 소나무 이름을 구불구불한 잎 모양처럼 '파마송'이어서 이름 보고 재밌어서 한참 웃었다.
관리 잘한 분재도 구경하고.....
흐린 날 유난히 눈에 띄는 예쁜 꽃 '알라만다' 사진도 한 장 찍고,
우리끼리 '명품관'이라고 부르는 코너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나무 구경을 한다.
명색이 곰 공원인데, 우리가 봄에 왔을 때는 불곰 몇 마리 있는 우리만 보고 휙 지나쳤다. 이번엔 더위를 피해서 자꾸만 물웅덩이를 찾는 반달가슴곰 우리를 찾았다. 크게 네 개의 우리로 나눠져 있다. 우리마다 있는 반달가슴곰 크기가 다른 것으로 보아 월령별로 분리해서 관리하는 모양이다.
반팔 옷 입고도 더워서 우리도 헉헉거리는데 털옷 입은 얘들은 오죽 더울까 싶다. 이 구조물 위에 물이 바로 오는 자리는 서로 차지하려고 자리다툼까지 한다. 한 번 시원한 맛을 본 곰 한 마리가 저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고, 그 자리를 노리고 올라오는 다른 곰에게 "저리 가~!"라고 외치니까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
마침 먹이를 주는 시간이어서 가만히 살펴보니, 개사료를 먹이로 준다.
이곳을 만든 분이 타던 올드카 몇 대를 언덕에 전시해놨는데, 딸이 이 차가 마음에 든다며 한참 구경한다.
보랏빛 나는 작은 열매를 보고 이 식물이 뭐냐고 묻는다. 최근에 금강수목원에서도 이름을 찾아봤는데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검색했다. '좀작살 나무'
어릴 때 우리집에 세 들어 살던 새댁이 가지고 있던 칼라판 대백과 사전을 빌려서 식물 이름을 보는 대로 외워서 꽤 많이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엊그제 검색해서 찾았던 식물 이름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오후에 느지막히 들어가서 마감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밖으로 나왔다. 마침 정문에서 오랜만에 무지개를 보고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그날 우리가 이렇게 놀았다고 기억하기 좋게 사진 찍은 것 순서대로 기록해 둔다. 내 머리는 돌아서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서 처음 맞는 명절 전날에 우린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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