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3
오전에 출발해서 대구까지 가는 길에 금강 휴게소에 들렀다. 20대 중후반 정도까지 통영에서 서울 갈 때, 버스를 타면 지금은 창원으로 행정 편입된 마산을 거쳐서 대구 방향으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가끔은 추풍령 휴게소에 들르고, 가끔은 금강휴게소에 들렀다.
짧은 휴식 시간에 화장실에 달려갔다가 핫도그 사 먹을 시간이 생기면 종종 얇은 밀가루 반죽만 입힌 소시지 든 핫도그를 맛있게 먹었던 아련한 기억이 있다. 25년~30여 년 세월 지나는 동안 경부선을 그 방면으로 탈 일이 거의 없었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난 이후로는 그 길로만 주로 다녀서 좁고 위태위태했던 시절의 경부선만 기억한다.
딸은 이곳엔 처음 왔다. 날이 추워서 살얼음이 언 강이 바로 앞에 보이는 휴게소 풍경이 가슴을 뻥 뚫어주는 기분이었다. 그리 좋지 않은 일을 처리하러 나서는 길이어서, 어쩌면 그 흐름을 봉합하여 마무리하고 마감하는 뜻이 담긴 것이기도 하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금강 휴게소에 들러서 아주 오래전에 가끔 고속버스 타고 다닐 때 아주 잠깐 들러서 본 금강휴게소에서 본 짧은 순간의 기억 밖에 없다.
그래도 종종 서울까지 버스 타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렸던 먼 길을 달리면서 평소엔 맛보기 어려웠던 특별한 간식 한 가지 사 먹는 게 특별한 추억인 듯 기억에 남아서 오늘 그 자리에서 맑은 하늘과 물을 보는 게 아이처럼 들뜨고 행복했다.
여자 화장실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
잠시 들러서 화장실 쓰고 집에서 내려온 커피 한 잔 마시고 차를 돌리려는데 딸이 복권판매점을 보고 눈을 반짝인다. 마침 가방에 지폐가 있었다. 딸이 내려서 몇천 원어치 행운을 사 온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눈두덩에 난 뾰루지가 너무 커져서 밖에 못 나가겠다고 투덜거렸는데 결국엔 따라와 줘서 고마운 마음에 하고픈 대로 소소한 것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금강 휴게소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추풍령 휴게소에도 들렀다. 금강 휴게소에서 쉴 때 마신 커피가 내 장을 자극해서 여기도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구에 도착해서 밥 먹을 곳을 찾는 것보단 여기서 간단하게 한 끼 먹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식당에 들어갔더니 로봇이 라면을 끓여낸다. 이야긴 들었어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어서 둘이 신기하게 한참 구경했다.
음식 서빙하는 로봇이나, 바리스타 로봇은 봤지만, 라면 끓이는 로봇은 처음 봤다. 우리가 어릴 때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장면이 현실이 된 거다. 앞으로 내 딸이 내 나이쯤 되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대구에서 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금강 휴게소에 들렀다. 양방향 휴게소여서 다시 나갈 때 조금 신경 써야 한다는 것 외엔 평일이어서 그런지 언 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졌다.
가끔 답답할 때, 집에서 커피 내려서 보온병에 한 통 담아서 여기 와서 마시고 가도 나쁘지 않겠다. 그러기엔 다소 먼 길이지만, 어느 날 문득 그러고 싶은 날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