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8
낮에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볕이 어쩐지 따스해 보여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이케아 매장에 가구 고르러 다녀온 뒤에 한 번도 외출하지 않고 집콕하고 있었더니 오늘쯤 마침내 좀이 쑤실 때가 된 거다. 국내 여행 대장정까진 아니어도 이 동네를 끼고 한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시간 내서 다녀보고 싶고, 이왕에 혼자 가는 것보단 딸이라도 이끌고 가는 게 좋은데 딸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아니, 나랑 놀아줄 생각이 없는 거다. 그래도 포기 못하고 혼자 나갈 채비를 하면서 딸내미 방에 몇 번 들락거리며 조금씩 음성의 톤을 높였더니 어느 순간 먹힌다. 목적지는 현대아울렛. 마침 딸에게 필요한 물품이 있어서 거기에 꼭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한 해 사이에 급격하게 살 빠진 딸의 체격이 눈에 띄게 줄어서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도 다 바꿔야 하는데 모른 척하고 있었다. 전에 사준 속옷 종류도 특히 상의는 평범한 체격이 아니어서 기능성 속옷 외엔 맞지 않고, 그게 나오는 브랜드가 흔하지 않으니 가격도 착하지 않아서 어지간한 웃옷 하나 사는 값에 버금간다. 그걸 수십 만 원 결제하고 사 온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나도 입지 못할 정도로 살을 빼버려서 전부 다 새로 사야 하는 거다.
딸이 입을 새 패딩 하나 사고 속옷 가게에 들러서 피팅해 보고 새 속옷을 사서 그냥 나오려니 오랜만에 나온 걸음이 아쉬워서 괜히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녔다. 그러다 들어가 본 가구 전시장에서 소파 코너에서 가죽 소파에 앉아본 뒤에 딸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가격표를 보니 며칠 전에 내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여준 그 가죽 소파와 비교해서 더 싸지도 않은데 제품은 비슷해 보이니 그걸 사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묻는다. 마음에 별로 들지도 않은 천으로 된 소파 가격이 싸지도 않은데 그걸 들여놓고 이것저것 신경 쓰느니 보다 마음에 드는 가죽 제품을 사놓고 오래 쓰는 게 우리에게 오히려 맞는 소비가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가게 앞에 앉아서 웹사이트를 열어서 저장했던 제품을 바로 결제해 버렸다.
다음 달 카드값을 감당하지 못할 상태인데 도대체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할부로 갚으나 일시불로 갚으나 빚은 빚이니까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도 큰 금액이니 좀 쪼개서 갚으면 덜 힘드니까 여태 그렇게 해왔는데 이번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 계산을 못하는 것인지 내가 모르는 다른 내가 너무 계산을 잘하는 것인지 요즘은 나도 헛갈린다.
지난겨울에 이사하고 침대 두 개 사고, 매트리스 두 개 사고, 가구 두어 점 사는 것만으로도 지출이 컸다. 매일 쓰는 침대는 매트리스가 좋아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딸이 수긍할만한 좋은 매트리스를 구매하고, 내 것도 덩달아 좋은 것 사서 좋긴 한데 이사하면서 쓴 다양한 비용과 가구를 새로 들인 것만으로도 일 년 쓰는 생활비와 맞먹는 비용이 한꺼번에 들었다.
올해는 시작부터 실수 같은 지출부터 시작했다. 오래 쓰기도 했지만 배터리가 부풀어 오른 노트북을 새것으로 바꿨고, 4년 이산가족처럼 살다가 합친 살림에 둘이 모여서 얼굴 볼 공간이 필요한데 거실에 소파가 없으니 제 구실을 못하는 것 같아서 그 핑계로 소파를 새로 주문하고 보니 벌지 않으면서 쓸 때 나가는 이런 비용은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그래서 적정 비용에 맞춰서 천으로 된 소파를 사자고 했다가 결국 오늘 좋은 소파에 앉아보니 도무지 그건 안 되겠다 싶어서 벌어서 갚는다며 그냥 사버렸다.
이 일을 나중에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몰라서 일단 적어놓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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