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쇼핑몰에 가서 우리가 즐겨 먹는 한과를 한 봉지씩 샀다. 유과를 딸과 나 둘 다 좋아한다. 한 봉지만 사면 딸이 좋아하니까 몇 개 먹고 나는 그냥 안 먹는데 어제는 딸이 생강 맛 나지 않는 유과를 한 봉지 고르고, 나는 생강한과 한 봉지를 골라서 각자 한 봉지씩 안고 먹기로 했다.
그 덕분에 오늘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맛있는 유과를 실컷 먹는다. 마트에서 잘못 사면 비싸고 맛없는데 마침 그 아웃렛 지역 특산물 매장에 파는 한과 맛이 좋아서 거기 갈 때마다 한 봉지씩 사다 먹었다. 명절 핑계로 우리가 한과 사러 거기에 가기엔 먼 거리다.
내가 어릴 때 다들 잘 살지 못할 때여서 명절이나 되어서 새 옷 한 벌씩 얻어입곤 했다. 그때와 시절이 다르니 옷이야 때때로 필요할 때마다 사기도 하고, 쇼핑하러 가서 눈에 드는 옷이 있으면 필요하지 않아도 사 입다 보니 명절이라고 따로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고향을 떠나 살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 분명해진 것 같으니 마음이 여러모로 허전하고 복잡한 부분도 있다. 그걸 다 말로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어서 평소에 함께 가면 딸이 좋아하던 곳에 가서 예쁜 옷 하나 사주고 싶었다.
작년엔 내 몸이 날씬해서 새옷 사는 맛이 있었고, 이젠 내 몸이 불어서 옛날에 입던 옷 돌려 입고 새 옷 살 의지가 꺾였는데, 딸은 이제 날씬해지니 뭐든 사입하면 보기에 좋다. 미니 스커트 노래를 불렀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에 들어갔더니 눈에 확 띄게 예쁜 미니스커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나이에 너무 보수적인 부모 밑에 자라서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옷이지만, 딸은 미니스커트를 좋아하고 사달라고 몇 번 종종거렸다. 딱히 예쁜 게 없고, 비싸서 사지 않다가 어제 발견한 옷은 한눈에 욕심나는 예쁜 옷이어서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데 그 옷을 사고 난 뒤에 볼일 다 봤다는 듯 툴툴거리는 딸과 부딪혀서 급기야 화를 내고 말았다.
그전 날 낮에 나가서 새벽 1시까지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고 들어온 터라 몹시 피곤했을 테고, 감기 기운도 있는 것 같았다. 집에서 늘어지게 자고 싶은데 저를 끌고 나왔으니 불편하기는 했겠다. 말 붙일 데라곤 저 하나뿐인데 나에게 너무 홀대하는 게 요즘 계속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했다고 내 감정을 드러내고 말했다.
한과와 미니 스커트만 사서 그대로 쌩하니 돌아왔다. 다음날 갑자기 소파 배송 온다는 전화를 받았으니 집에 가서 거실을 치워야 한다. 기운을 아껴서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더 돌아다닐 생각이 없기도 했지만, 딸이 곁에서 하는 게 너무나 거슬렸다. 그런 적이 한두 번 아니었지만, 거의 대부분 내가 더 기분 좋게 해 주고 비위 맞춰서 이끌고 다녔다. 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쌓인 감정을 토해냈다.
그러고 돌아와서 저녁에 뭔가 생각을 확 놓아버린 모양이다. 화를 내지 않다가 한 번 화를 내고 나니 시원하기도 하고, 머리가 멍해지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서 안경을 찾아내야 한다. 이 좁은 집안에서 어떻게 안경을 잃어버릴 수 있나 싶지만, 어제 거실 정리하면서 많은 물품을 내 방으로 피신시키면서 책상 위에 있던 것이 흘러서 어느 구석에 다른 물건에 쓸려서 끼어 있지는 않을까.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집을 홀랑 다 뒤집어서라도 찾아내야 할 것 같다.
*
내가 안경을 벗는 자리는 책상 앞에서 혹은 가까운 곳 글자를 봐야하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물건을 자세히 봐야할 때다. 바닥에 두지 않고 주로 탁자, 책상 등 뭔가 위에 올려놓는다. 그 기억을 되짚어서 딸 방에 가서 혹시 딸 책상 위에 뒀는지 확인하고, 거실에 나가서 어제 물건 정리하면서 앉았던 자리에 앉았더니 피아노 의자 위에 안경이 있다.
어제 그 자리에 안경을 벗어놓으면서 여기 있는데 찾지 못하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거라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평소에 안경 벗어놓던 자리가 아니어서 그 생각을 하고는 계속 움직거리며 일하느라고 거기 둔 것을 집어올 생각조차 못하고 하룻밤 지나버렸다.
바닥이나 구석에 떨어져서 안경이 부서지거나 내가 아주 찾지 못할 어딘가에 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마음 놓고 졸음 쏟아지는 눈을 편안하게 해줘야겠다. 소동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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