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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11월 23일

by 자 작 나 무 2020. 11. 23.

추워지면 입으려고 한 계절 앞서서 산 반폴라 니트티를 입고 나왔다. 어쨌거나 새 옷인데 점심 먹다가 옷을 버렸다. 오늘 점심 메뉴에 등갈비 구이가 꽤 먹음직스럽게 나와서 베어먹다가 문득 딸 생각이 났다. 우리가 함께 밥을 먹지 못한지가 꽤 되었다.

 

둘이 만나면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뭐든지 원하는 대로 먹지만, 서로 떨어져 살면서는 생활비 아끼느라고 둘 다 음식값 지출을 줄이려고 마음대로 고기 한 번 사 먹지 않는다.

 

가끔 친구와 치킨집에 간다고 하고, 친구와 초밥집도 다닌다지만 일주일에 몇 번씩 고기 타령 하던 애가 그렇게 먹고 음식이 흡족할까 하는 걱정이 문득 들었다.

 

그게 뭐라고 맛있는 고기 한 점 먹다가 딸 생각에 울컥해서 손에 힘이 풀려서 먹던 고기를 옷에 떨어뜨렸다. 아뿔싸~ 오늘 아침에 입고 나온 옷 점심때 벌건 양념을 묻혀서 세탁해야 하게 생겼다.

 

그나마 기숙사가 가까우니 점심 먹고 바로 가서 다른 옷으로 바꿔입었다. 곧 시험 기간이어서 준비할 게 있어서 이번 주말에도 집엔 오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엊그제 통영 가는 길에 잠시 들러서 과일 산 것 건네주고 오면서 잠시 얼굴 본 게 전부다.

 

함께 사는 게 그런 것인가 보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잠들었다 깨면서 익숙해진 느낌. 그런 것이 줄어들면서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 같다. 같이 밥 먹는 식구라는 게 필요하다. 혼자 빈 사무실에서 저녁을 먹고 속이 더부룩하다. 졸리고 피곤하고 기분도 괜히 가라앉는다.

 

한 가닥 생각에 갑자기 울컥해지고 서러워진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함께이면서 혼자인 것과 다른 느낌. 이렇게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면 영영 그 누구와도 함께 살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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