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나와 어언 15년이나 알고 지내면서 주변 사람을 단 한 명도 소개해준 적이 없다. 심지어는 나름 절친이었는데도 모친 장례에도 참석할 길을 터주지 않았다.
이후 나는 그 의아한 인연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놓고 나를 달래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S의 초대를 받고 그 집에 다녀온 후에 나를 끝내 유령으로 만든 인연이 준 상처의 한 부분을 치유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과 분리되어 외따로 사는 나와 어린 딸의 존재를 지도 어디에도 점하나 찍힐 수 없는 무인도와 같이 느껴지게 했던, 그 인연에 대한 서운함은 오랜 세월에 걸쳐 땅속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진 빙하처럼 냉랭한 골이 깊었다.
내 인생의 일부분이 아프고 힘들었다 할지라도 누군가 내 인생을 스스로 비참하게 되뇌게 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나의 단층이 쩍 갈라져서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그 문제의 단면을 밖에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미안하게 만들던 그 관계가 내 탓이 아니라고 놓아버려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 연관도 없을 것 같은 일이 시공간이 씨줄과 날줄을 타고 경계 없이 어느 순간에 만나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기도 한다.
누군가의 시간과 공간으로 초대를 받고, 손님 대접을 받고, 관심과 대화의 시간을 나를 배려한 선물로 건네받았다. 오랜 친구가 내게 준 섭섭함으로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선물이었던 것처럼 그날의 만남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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