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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11월 26일

by 자 작 나 무 2020. 11. 26.

어제, 저녁 먹는 자리에 같이 가서 얼굴 본 뒤로 처음 만나서 대화할 계획이 전혀 없던 사람치곤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도 참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겠다.

 

마스크 밖으로 내놓은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한다. 생각보다 자기 나이가 많다는 말에 웃음이 났지만 내가 여태 그를 고등학생 취급한 것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할 법도 하다.

 

처음 기숙사에 들러보러 오던 날 나를 봤다는데 나는 기억이 없다. 그다음에도 더러 일요일에 열 체크 당번으로 입구에 있을 때 내가 지나치면서 그를 학생인 줄 아는지 인사만 받고 고개만 까딱하고 가더란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엊그제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하는 그에게 학생이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느냐는 질책도 했으니 시종일관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고, 서로 인사 나눈 적 없는 그를 학생으로 착각한 나를 무신경하다고 해야 할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지난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 덧붙여 진행하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의 일까지 꽤 자기 인생에 대해 내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었던 답답함을 낯설지 않은 타인에게 쏟아놓게 될 때가 있다. 나도 그런 적 있었을 것이다.

 

계획에도 없이 어제저녁 함께 밥 먹는 시간 동안, 차 마시는 시간 동안 내게 어떤 이야기든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도감과 믿음을 은연중에 갖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 청년과의 대화로 자연스러운 내 모습은 그렇게 불편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

이야기하는 순간의 따뜻함이 전부다. 돌아서면 곧장 내 자리로 금세 돌아가야 한다.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 다 거울 너머 세상에 산다. 혼자 남은, 혼자 남겨진 텅 빈 학교 건물 안에 물에 젖은 무거운 날개를 말리지 못한 새처럼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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