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이었을 때도 초복인 줄 모르고 지났는데, 오늘 또 중복인 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그다지 절기를 챙기지 않는 편이어서 큰 의미는 없지만, 그렇게 지내다 보면 모든 날이 그날이 그날 같아지는 게 싫으니 가끔은 안챙기던 것도 챙기고 기분삼아 생색도 내 볼 일이다.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삼계탕을 굳이 복날이라고 먹으러 간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아 신발 벗을 자리도 마땅찮은 삼계탕 전문식당엔 찾아가지 않았다. 화실 언니와 가끔 입맛 떨어졌을 때 찾아가는 낙지집엘 갔었다.
오전 수업 끝내고 허기진 참에 먹은 늦은 점심이어서 그랬는지 워낙 맛있게 잘하는 집이지만 정말 맛있게 잘 먹고 집으로 들어왔다. 오후 수업 끝내고 얼마나 피곤했는지 깜박 누워 졸았는다 싶었는데 친구 애들이랑 우리집 딸래미가 함께 어울려 제법 왁자지껄하게 놀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려보내려 하니 혼자 남아 심심해질게 싫어서인지 언니 오빠들을 보내줄 생각을 하지 않는 얌체 딸. 그래서 걔네 집에 데리고 가서 놀아라 하니 나를 떨어져서는 죽을 것처럼 늘 엄살인 딸 아이가 (화장실까지 늘 따라다니는 근성...) 어쩐 일인지 명지네를 따라간다. 이게 어인 횡재인가. 다리 뻗고 누웠다 곰곰히 생각하니 명색이 오늘부터 휴가인데 평범하게 보내고 싶진 않은데 어찌 보낼까.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이를 데리러 친구 집엘 갔다.
난 걸어서는 가기 귀찮아 하는 거리를 꼬맹이 셋이서 손잡고 걸어갔던 모양인지 친구네 집에 도착하니 딸래미 둘이 열심히 목욕중이었다. 친구는 낮엔 일하러 나가니 아이들 뿐이다. 그래서 방학동안 그냥 두기 신경쓰여서인지 우리집에 공부하러 보내기로 한 모양이다. 꼬맹이를 데리고 시내쪽을 향해 슬슬 걸어나오다보니 그렇게 뜨겁던 한 여름의 볕이 서서히 수그러들고 있었다.
얼음 가게 앞에서 대형 얼음을 전기톱으로 자르는 광경을 처음 본 아이는 한참을 뜨뜻해진 내 손을 꼭 잡고 신기한 듯 구경했다. 시장 구경을 갈까 하다 약간 시장기 돌 때 저녁부터 먹어야겠기에 한때 아이랑 자주 갔었던 해물칼국수집을 찾았다.
자리에 앉아 주방을 쳐다보니 아무래도 주인이 바뀐 모양이다. 고정된 메뉴 외에 다른 메뉴가 생겼다. 그 집은 해물칼국수와 김치왕만두 전문이었는데 다른 메뉴가 생긴건 인수받으면서 새 주인이 만든 것인 듯.....아니나 다를까 주방장도 바뀌어서 칼국수 맛도 예전같지 못했다. 김치 왕만두 크기는 물론이요, 양도 두 개나 줄었다.(우띠~~) 그래도 맛있게 잘 먹는 딸 아이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나는 그저 즐겁다.
둘이 점심, 저녁을 그렇게 밖에서 먹고 어찌 살림 거덜날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은근히 외식을 자주 한다. -게으름의 증거) 그래도 마냥 즐겁다. 아이 손을 잡고 어제 여름옷 사러 들렀던 옷가게에 가서 하트 모양 풍선 하나를 얻어서 아이 손에 쥐어주고 제법 어둑해지는 거리를 걸어 다니며 윈도우 쇼핑을 하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문득 버스에 오르는 순간 지난 여름에 즐겨가던 음악분수가 나오는 바닷가가 떠올랐다. 그래 거기로 가자~ 아이는 음악분수 말만 들어도 열광을 한다. 마리나 리조트 근처에 음악과 함께 춤추는 분수가 있다. 음악을 얼마나 크게 트는지 정말 그 물줄기가 음악따라 춤추는 듯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이도 따라 춤추듯 뛰어 다니고, 난 귀에 익숙한 노래가 나올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며 남 생각않고 노래를 따라 부르곤 한다. 워낙 스피커 볼륨이 크니깐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걱정할 염려가 없는 까닭이다.
오늘은 80년대 초반 대학가요제 곡들이 흘러나왔다. 어찌나 반가운지 다른 어떤 흥겨운 곡보다 신이 났었다. 그 즈음 즐겨 들었거나 귀에 익은 흘러간 가요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어두운 바닷가 홀로 나는 새야~~ 새야~ 갈곳을 잃었나 하얀 바닷새야~~~'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기분은 좋은데 몸이 피곤하여 아무래도 오래 앉아 있진 못할 것 같아 아이를 달랬다. 내일 저녁 해질녘에 또 나와서 오래 오래 있다 가자고....여름 휴가는 밤마다 거기서 보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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