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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245

바람이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 없이는 견디기 힘들던 날씨도 때가 되니 거짓말처럼 시원해진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때를 기다리면 된다. 준비 없이 시간만 보내다 맞는 이 시간은 두려움 그 자체다. 습관처럼 해 오던 것을 뒤로 미루고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더니 일거리와 걱정만 눈더미처럼 불었다. 딸에게 손 가는 일이 없어지니 내 시간도 많아지고 여유도 생겼지만, 그 덕분에 힘들어도 쫓아가던 걸음에 힘이 빠져서 가끔 천천히라도 걸어야 할 길에 멈춰서 멍하니 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누군가를 내 삶에 들일 수 있을까. 누군가와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까...... 이만큼 살아낸 것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2021. 8. 16.
화이자 백신 2차 접종 8월 10일 3주 전에 1차 접종하고, 오늘 2차로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1차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혀 이상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엔 심지어 주사 맞은 자리가 뭉치지도 않았다. 두려워야 할 상황에 백신이라도 맞아서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2021. 8. 11.
허공의 나무 허공의 나무 그 나무에 꽃 없다 피우지 못하고 꺾어버렸다 가슴에 더 할 말 없다고 사랑에게 달려가는 발 묻어버렸다 문자 밖에서야 쓰여지게 될 것이라고 터져 나오는 꽃들 삼켜버렸다 그 나무에 숨 없다 뿌리처럼 비틀린 빈 목숨만이 붙어 옆얼굴이 울고 있다 정끝별 사랑을 이루지 못해 물거품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 인어공주처럼........ 나도 사라지고 싶다. - 이런 기분이 들 때 읽은 시 2021. 8. 9.
8월 7일 장승포 천화원에 오랜만에 삼선짬뽕 먹으러 다녀왔다. 장승포항이 보이는 뷰 카페 실외에 좀 앉아 있었더니 그러잖아도 새까만 팔이 더 까매졌다. 장장 12일동안 방 안에서 숨만 쉬고 지냈다. 이상하게 오른쪽 목덜미가 계속 신경 쓰이고 아파서 그 핑계로 누워있거나 빈둥거리기 일쑤였다. 지난 6월에 건강검진 받으면서 받았던 암 검진 결과지를 받았다. 전부 이상소견 없음. 숨 잘 쉬고 살아야지. 2021. 8. 8.
8월 4일 오늘 딸이 제 남자 친구 만나러 나가고 나니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이렇게 가볍고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책임져야 할 누군가와 함께인 것과 꽁꽁 여미고 긴장한 마음의 옷고름 풀어놓고 기댈 수 있는 존재와 함께인 것은 다르겠지. 혼자는 아니어도 자식은 자식일뿐. 내 머릿속을 열어 보여주지 않아도 싱긋이 함께 웃으면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 이 생에는 더 만날 수 없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사람 하나 짝사랑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멀리 반짝이는 등대 불빛처럼 망망대해를 떠도는 섬인 내 눈에도 빛나는 사람. 누군가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자리가 부모의 자리가 아닌가 싶다. 며칠 뒤에 입대하는 딸의 첫 남자 친구와 데이트하러 간 딸에게 새 원피스를 사 입혔다. 남자 .. 2021. 8. 4.
8월 3일 - 연리지 이제 나는 건강하고,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다. 그때도 사랑을 몰랐겠냐마는....... 사랑이 그립지 않았겠냐마는........ 농축한 언어가 가슴에 별처럼 박힌다. 숨 쉴 때마다 따끔거린다. 집중이 잘 안 될 때 옛날 옛적에 공책에 시를 베껴 쓰곤 했다. 정말 오랜만에 어제에 이어 오늘도 굳었던 손을 놀리기 시작 정끝별 시인의 연리지를 베껴 쓰다가 문득 에디뜨 삐아쁘의 노래가 떠올랐다. 타인의 생각을 변화하기 위해 꿈속에 침투하는 영화 인셉션에 자주 나왔던 곡. 애플 뮤직에서 리스트를 만들고 반복해서 몇 곡 들으며 미친 듯이 욕실 청소를 했다. 물 때를 다 닦아내고 샤워하고 나니 새사람이 된 기분이다. 내 집은 아니지만,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따뜻한 물에 씻고 누울 자리가 있다. 인간에게 집이란 얼마나.. 2021. 8. 3.
8월 2일 - 가난한 사랑 노래 여유가 생기니 사무치게 외롭다. 바쁘게 쫓기며 사는 건 싫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왜 이렇게 외로운지...... 20대에 심심할 때 하던 시 베껴쓰기를 했다. 오늘로 자발적 일주일 자가격리가 끝난다. 일주일 내내 집에서 잠옷 바람에 지냈다. 제주 바람 쐬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 일주일 동안 집에 가만히 있었더니 오늘은 답답함이 최고조에 달한다. 붓놀림에 마음이 차분해지다가 급기야 시구가 가슴에 사무친다. 2021. 8. 2.
휴식 아무 일도 없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복에 겨워서 내가 쓸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직 남아있는 욕망의 조각을 글로 빚어내는 것 뿐. 행복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불만이 있어서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표현일 뿐. 내가 보낼 수 있는 최상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더운데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에어컨 바람 앞에 빈둥거리거나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혹은 쌓아놓은 책 한 권을 빼내서 읽고 싶은 몇 장만 읽고 다시 쌓아놓거나 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안다. 다시 태어나서 어떤 생을 살 것인지 설계하고 후회하기보다는 지금 내 삶을 충분히 만끽하고 잘 견디고 헤아리며 존재하는 이 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2주 동안 잘 쉬었다. 이제 일할 시간~ 2021. 8. 2.
백신 맞은 날 해야 할 일은 없다. 하게 되는 일을 하면서 살 거다. 1년 반 동안 마스크 끼고 잘 피해 다녔고, 오늘 코로나 19 백신을 맞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 접종한 뒤 나에겐 아무 문제도 없는 상태다. 밤늦게 열이 나기도 한다니까 일찍 씻고 누워야겠다. 어제부터 출근하지 않게 되니 살짝 불안한 감이 있었다. 하루 더 쉬는 게 왜 그렇게 어색하고 이상한지. 내일은 자습 감독 당번이어서 아침에 출근할 것이고 그 외엔 계속 방학 동안 해야만 하는 일 더미에 묻혀 재택근무하며 시간을 보낼 참이다. 집중 안 되고 피곤하고 어깨 뻐근한 정도는 일반적인 증상일 테니 쉬어야겠다. 같이 백신 맞은 동료는 열 나서 타이레놀을 먹었다고 한다. "엄마는 나이에 비해 건강한가 봐. 흔한 감기, 몸살도 안 걸리고 크게 아픈 데도.. 2021. 7. 20.
백신 1차 접종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완료 나, 정말 여행 좀 다니면서 살고 싶다고~~ 사람도 못 만나고, 여행도 못 가고...... 늙는다 늙어~ 2021. 7. 20.
여유 몸이 건강해지면 마음이 느슨해져서 일없이 서글픈 생각에 젖어 들기도 한다. 거짓말처럼 그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언제 내가 어디가 아팠던가? 라고....... 건강 검진 결과를 받아 들고 나서부터 이 마음이란 것이 거덜먹 거리기 시작했나. 내일 당장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첫 월요일을 맞은 여유인가. 화요일에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고 3주 뒤에 2차 접종까지 하고 나면 한시름 놓을 수 있으려나. 그간 쌓인 긴장을 풀어놓기 위해 어디든 가고 싶다. 마음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너무 오래 졸인 마음이 투정 부리기 시작하니 감당하기 힘드네. 2021. 7. 18.
건널목에서 2021. 7.17. 오후에 잠들었다가 깨니 어쩐지 허전하다. 초저녁인데 해가 길어서 아직 밝은데 밖에 나가서 좀 걸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기 싫은 거다. 일단 보류, 월말 김어준을 듣는데 와인 이야기가 나온다. 갑자기 와인이 급 당긴다. 집에 남은 와인은 따놓고 맛없어서 고기 요리에나 쓰려고 남겨 놓은 것뿐이다. 와인 사러 마트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이 게으른 몸이 움직여진다. 와인을 골고루 파는 대형 마트까지는 멀어서 동네 마트에 갔더니 호주산 쉬라즈를 꽤 저렴한 가격에 할인 판매 중이다. 일단 한 병만 샀다. 안주거리를 준비한 게 없어서 과일 두어 개 깎아놓고 한 잔 따라서 몇 모금 마시니 금세 정신이 흐물흐물해진다. 이럴 때 딱히 떠올릴 남자가 없다는 게 아쉽.. 2021. 7. 17.
사마귀 한동안 연이어 비가 내리다가 갠 그날은 하늘에 구름이 몽글몽글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운동장에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작은 행사가 열렸고 스탠드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속에 나도 멍하니 서서 하늘을 보다가 스탠드 위에 있는 작은 사마귀를 발견했다. 큰 사마귀는 어쩐지 무서운데 이 작은 것은 어쩌면 이렇게 예쁜지....... 하늘에 뜬 구름 사진 한 장 찍다가 사마귀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곧 웅성임과 함께 그 작고 무해한 생명체를 발견하고는 누군가가 지레 겁먹고 밟아 죽여 버렸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게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말릴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소란을 떨고 밟아버려서 저 사마귀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잠시 내 휴대폰 카메라에 담긴 것이 마지막이었다. 모이면 왜 그렇게 쉽게 흥분하여 행동하는.. 2021. 7. 17.
똥 밟았네 중독성 있는 노래와 춤! 방학동안 이 춤이나 배워볼까? 보자마자 확 꽂히는 춤과 반복되는 울림 똥~ 밟았네~똥 방학은 했으나..... 어디든 갈 수 없는 갑갑함...... 똥~ 밟았네~똥~ 2021. 7. 17.
7월 16일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서 PCR 검사를 받으러 갑자기 가게 된 A가 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유일하게 한 시간 빈 시간까지 꽉 채워서 대강을 부탁하고 갔다. 말이 부탁이지 그냥 통보하고 가버린 거다. 나 정말 오늘 업무가 많아서 입에서 불이라도 뿜을 지경이었는데....... 왜 다른 사람 찾지 않고 나한테? 괘씸해도 생각뿐이지 따질 수도 없지만, 오늘 너무 힘들어서 솔직히 좀 화가 났다. 나쁜 시키 나 대학원 다닐 때 입학해서 나이도 4살이나 어린 게 나를 동갑쯤 되는 줄 알고 참 패기 넘치게 작업 멘트를 날렸던 것을 얼굴 본 순간 바로 기억해냈다는 걸 모르겠지? 눈이 이마 꼭대기에 붙었던 시절, 내 인상은 날카롭기 짝이 없어서 우연히 길 가다 말을 거는 남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2021. 7. 16.
말 목을 베다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1. 7. 10.
7월 9일 신발장 번호를 나이 순으로 주는 곳도 있었다. 신발장 번호 덕분에 바로 나이가 대충 공개된다. 숨겨봐야 뭐 하나...... 그래 봐야 덕 보는 것도 없고. 여기는 시험 감독 짤 때 나이순으로 된 표를 메신저로 보내준다. 무슨 인기 랭킹도 아니고 왜 번호 붙여서 나이순으로..... 그렇다고 한 시간이라도 편하게 빼주는 것도 아니면서. 덕분에 대면 대면하던 어떤 분이 어제 점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서 밥 먹으면서 랭킹 순서 보니까 '바로 내 아래던데....... 근데 우리는 터울이 좀 있나 봐요......'라고 말을 건넸다. 여기 올해 처음 근무지를 옮긴 사람은 그분을 포함해서 여자 3명뿐이다. 사무실이 각각 다른 층에 있어서 얼굴 볼 일도 없고 업무 반경도 다르다. 우연히 점심시간이 겹쳐서 그것도 우연히 줄.. 2021. 7. 10.
음란마귀 * 1교시 정감독으로 입실 거의 부감독은 동성인데 오늘은 좀 조심스러운 남자 부장님이시다. 시험 시간에 늦는 학생이 있어서 책상을 복도로 하나 뺐다. 쳐다볼 생각은 없었는데 정면에서 책상 들고나가고 의자 들고나가는데 등판, 팔뚝, 엉덩이까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내 속에 음란마귀가 어젯밤부터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보다. 동료는 남자가 아니다. 도리도리~ 침묵 속에 갑자기 방귀 소리가 난다. 누군가 참다가 흘린 방귀다. 아무도 웃지 않는다. 한참 침묵 뒤에 또 방귀 소리가 또렷하게 났다. 이 정도면 한바탕 웃어줘야 하는데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웃는 애들이 얼마나 긴장 상태로 시험을 보는지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 안타까운 상황이 씁쓸한데 어쩐지 나는 웃음이 날 것처럼 어딘가 간지럽다. 그 순간 나와 비슷.. 2021.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