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300 PMS 어제 버스에 오르자마자 딸은 내 옆자리에 앉아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집에 가서 마저 이야기하자고 몇 번을 물린 다음에야 말을 끊었다. 감정이 그토록 격앙되게 하는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어보니 평소엔 그런 일에 너무 의연해서 놀라울 정도였던 딸이 심하게 감정적이다. 내게 끊임없이 그 말을 다 쏟아내야 안정될 것 같았지만 시외버스 안에서 계속 흥분해서 이야기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시외버스에서 내린 뒤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딸이 이번엔 캐리어를 두고 내려서 다시 캐리어를 찾으러 홈을 떠나버린 버스 찾아 헤매야 했다.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 안에서도 계속 뭔가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딸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3주 만에 집에서 만나게 되는 딸을 반갑게 안아.. 2020. 11. 7. 11월 5일 그리 길지 않아도, 그리 깊지 않아도 누군가와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회 정의론 수업이 한창일 때 어진이를 비롯한 여학생 몇 명이 책을 가슴에 안고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이 일반적인 정의라고 했다고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는데 국가의 법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것도 지켜야 하나요? 그것도 정의인가요?" 그 작은 체구에 눈빛을 반짝이며 도대체 이게 뭐냐고 묻는 그들에게 찬찬히 이야기해주고 이전 학기에 배웠을 시민 불복종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 의문을 품고 부정의 한 것을 발견하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그 수업은 충분했다고 질문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어휴~~ 예쁜 것들~~~" 그 예쁜 애들을 만나는 시간은 신난다.. 2020. 11. 5. 졌다...... 아주 사소한 것에 걸려서 감정이 촉발됐다. 비아냥거리는 듯한 태도가 내게는 거슬려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다른 때였다면 무시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정말 극도로 감정적이어서 그 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둘이서 따져서 하나씩 풀어서 대화한 뒤에 뒤끝 없이 감정의 오류 외엔 남는 것 없이 해결되어서 그나마 1차전은 해결되었고, 그다음에 바로 이어진 수업에서 평소에 생각했던 바와 그전 시간에 사소한 충돌로 촉발된 주제로 이야기하게 됐다. 얍삽한 비열함. 수긍하고 공감할만한 이야기였어도 되도록 말하지 않고 지나치려던 내 태도가 어제 그토록 적극적이었던 것은 역시 호르몬의 역습 때문이었다. 어제는 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감정대로 다 말해버렸을까. 알아차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2020. 11. 5. 11월 3일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신 남 선생님께서 퇴근하는 내 옷자락을 붙드신다. 돌아보니 가방에 반찬통 챙겨 오신 걸 슬쩍 밀어주신다. 얼마 전에도 종류대로 반찬을 담아서 갖다주셔서 안 먹을 저녁을 먹기도 했는데 오늘도 반찬 몇 가지를 담아서 가져오셨다. 올가을 들어서 여러 분의 호의를 받아서 어찌 다 소화할지 걱정이다. 자신밖에 모르고 자신밖에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된 나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을 챙길 줄 몰라서 그렇게 망가뜨렸다가 사람처럼 살려니 쉽지 않다. 감사한 마음과 온기를 품고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 어떤 선의의 말과 행동이거나 순간 넘친다고 생각하면 입을 다물고 삼키고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치로 충분히.. 2020. 11. 3. 강바람이 차다 그 기사를 읽고 한참 어두워진 길에서 목놓아 울었다. 영영 찾고 싶지 않은 침몰 지점에 정확히 길을 냈다.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빨리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구급차를 불러야 할 것 같아서 터진 통곡 같은 울음을 억지로 멈췄다. 말할 수도 울 수도 없는 이것이 무엇인지..... 찬바람에 몸이 더 상할까 봐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얼마 되지 않는 그 길을 겨우 더듬어 돌아왔다. 껍데기를 하나씩 다 벗겨내지 않으면 결코 드러나지 않는, 내 속엔 억만 겁이 녹아 형체를 잃은 그림자가 아직 남았다. 토해낼 수도 삼켜지지도 않는 이것이 무엇인지..... 2020. 11. 2. 11월....... 이곳에서 가을은 더 짧게 끝나버릴 모양이다. 올해는 어찌 그냥 넘어간다 했더니 일찍 증상이 시작됐다. 몸 사리고 말을 아끼고 잘 챙겨 먹고 최대한 자신을 옥죄지 말고 잘 버텨야겠다. 남들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나대로 지금 상황에 맞춰서 살면 된다. 죄책감 느끼지 말고 그냥 버티자. 그래야 산다. '마의 11월' 기록한 자료를 뒤져보고 제일 나은 방법을 찾아야겠다. 기침을 숨길 수 없을 정도가 되니 대놓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당분간 커피를 끊어야겠다. 나도 예전엔 이랬는데..... 딸이 수건을 색깔대로 접어서 넣어놨다. 이번 주엔 매일 택배를 받게 될 것 같다. 한 번에 쇼핑했는데 물건이 오는 날짜는 제각각이다. 점심때 더러 걸으러 밖에 나가도 소심해서 나는 혼자서는 학교 밖에 나가지 .. 2020. 11. 2. 마무리 어제 바닷가에 달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 들렀더니 싱싱한 부추 한 단에 100원이라서 들고 왔다. 일주일 이상 시간이 지나면 채소 상태가 좋지 않아서 되도록 장을 보지 않을 참인데 냉장고에 남아있는 달걀을 처리하는 데 부추를 쓰기로 했다. 한 단 전부를 다 쓰지는 못하고 최대한 많은 부추를 썰어 넣고 달걀 8개를 다 깨서 달걀말이를 만들었다. 냉장고에 있던 유일한 채소 당근도 좀 넣고 함께 말았더니 생각보다 훨씬 맛이 괜찮다. 썰다가 몇 개를 집어먹었는지 한 입 먹으면 계속 먹게 된다. 집을 비운 동안 냉장고에선 무엇이 녹았는지 폭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더러운 것이 녹아내려서 냉장고를 해체해서 씻었다. 나도 혼자 이 집에 덩그라니 남는 게 싫은데 딸도 제 방이 따로 있으니 여기 .. 2020. 11. 1. 10월 31일 집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왔더니 바닷가에 뜬 달이 건물 사이로 빼곡 고개를 내민다. 조금 더 서둘러 걸었어야 했다. 통영 국제 음악당 블랙박스 공연장 위에 달이 걸렸다. 더 하늘 높이 달이 오르기 전에 바다에 비친 광경을 보고 싶어서 여기서부터 뛰어갔다. 금빛 달, 금빛 물결, 그대가 그리워서 숨 가쁘게 뛰었다. 걷다 보니 달빛이 창백해지고, 기분도 푸르뎅뎅해지고, 찬바람에 목덜미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스카프를 가져왔는데 꺼내지 않고 바람을 맞고 있었다. 달빛에 홀려서 바람이 차가운지도 몰랐다. 이대로 걷다가 어디서 폭 고꾸라질 것 같은데 마침 딸내미가 동기랑 과제 끝내고 콩나물 국밥집 간다고 톡을 보냈다. 아득하게 정신이 나갔다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혼잣말하다가 들켰는데 내 뒤에서 걷던 아주머니 한 .. 2020. 10. 31. 10월 30일 그 흔한 질문 하나 없이 완벽하게 시험은 잘 치러졌다. 12시 반 조퇴 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 선생님의 아주 빠른 차를 타고 진주에서 꽤 유명한 유부 김밥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내 가방과 함께 딸내미 원룸 앞까지 태워줘서 감사하고 기분 좋았다. 통영에서 퇴근한 뒤 곧장 터미널로 나를 마중 나올 친구와 오랜만에 만날 약속이 미리 잡혀있어서 딸내미 원룸에서 한두 시간 쉬었다 가면 될 것 같아서 잠시 누웠다. 딸은 바빠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도 못 보고 그냥 가겠다. 갖다주려던 옷가지를 꺼내놓고 작은 침대에 누워서 뉴스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약속 시각보다 훨씬 먼저 도착하거나, 조금 늦게 도착하는 차 둘 중 먼저 도착하는 차를 타려고 일찍 나섰다. 표를 끊고 금세 도착할 차를 .. 2020. 10. 30. 10월 29일 내일까지 대부분의 일은 점심 전에 끝난다. 오늘도 점심 먹고 나니 대부분 조퇴하셨다. 나 혼자 빈 연구실에서 빈둥거리기도 지겹고, 밖에 나가봐야 온통 내가 싫어하는 냄새가 역하게 나니 짜증 나고, 별 수 없이 뭔가 일을 시작해볼까 마음먹고 새로 커피 한 잔 내리고, 음악도 틀어놓고 잠시 앉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온다. 히말라야에 가자는 남 선생님 전화다. 얼마 전에 거기 한번 가보자는 말은 나왔지만, 시간이 마땅하지 않아서 갈 수가 없었는데 심심해서 죽기 일보 직전인 나를 구해주신다. "히말라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좋아요~좋아요~좋아요~~~!!!"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동네 함양군 유림면 천왕봉로에 있는 찻집에 갔다. 정말 귀여운 똥강아지 두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다가와서 내 냄새.. 2020. 10. 29. 챙겨 먹는 것을 자꾸 잊는다. 찬바람 나기 시작하니 자주 목이 간지럽다. 내가 산 것보다 지인들께 받은 것이 훨씬 많다. 골고루 잘 챙겨 먹어야겠다. 잠시 괜찮았다고 계속 괜찮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끗 차이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할 것. 2020. 10. 29. 10월 28일 작은 모임이 있어서 점심을 밖에서 먹었다.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에 본 하늘 오후에 일찍 일과가 끝났다. 화요일에는 오 선생님 퇴근하시는 차를 타고 진주에 다녀왔고, 어제는 남 선생님께서 진주 가실 일이 있다고 하셔서 또 따라나섰다. 어차피 퇴근하고 걸으러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일찍 기숙사에 들어가 봐야 좋은 것 없다. 전날에 저녁도 함께 먹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섭섭해서 딸이 좋아하는 초밥 사준다고 학교 앞에 나오라고 연락했더니 여전히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하겠단다. 혼자 진주성이나 남강변이라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조금 걷다 보니 밥만 먹고 들어가겠다고 연락이 온다. 초밥 먹자고 불렀는데 내가 점심 회식에 초밥을 먹었다고 했더니 딸이 메뉴를 바꿔준다. 초밥 먹고 싶어서 간신히 마음을 바꾼 딸에게 감지.. 2020. 10. 29. Warning 월요일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변화를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다. 알지만 모두 제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월요일에는 이어 플러그를 꽂고 수업 시작부터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 큰소리로 뭔가 이야기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중에 내가 평소에 하는 행동보다 훨씬 감정적이고 과한 반응을 한다. 그전에 시간을 두고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져서 그때부터 이상했다. 평소엔 생각해야 할 것도 생각하지 않는데,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도 생각한다. 쓸데없는 감정이 넘쳐서 입 다물고, 눈 감고, 기록하지 말고 잠이나 자야 한다. 사진도 다음에 옮기고 며칠 동안 침묵할 것! 2020. 10. 28. 10월 27일 가볍게 학교 주변 한 바퀴 돌자고 하셔서 나갔다가 한낮의 볕은 뜨겁고 그늘진 곳이 없어서 꽃봉산으로 향했다. 정말 걷고 싶지 않은 계단이 끝없이 위로 이어져있다. 평지는 걸어도 경사진 길을 걷는 것은 잠시 산책하는 정도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조금 걷다 보니 얇은 블라우스만 입었는데도 땀이 난다. 내가 먼저 항복했다. 꽃봉산 정자는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고 내려왔다. 해결할 수 없는, 해결하기 힘든,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두고 조심스럽게 오가는 대화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일과 마치고 예전처럼 걷기엔 주변에 발효 덜 된 인분 퇴비 구린내가 지독해서 전날도 그대로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작정 옆자리 선생님 퇴근하는 차에 올라탔다. 익숙한 곳에 내려서 방황하다가 단골 국숫집에 갔다. 딸은 이.. 2020. 10. 28. 10월 26일 어제 저녁,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경기도 어딘가를 지나면서 아파트가 즐비한 스카이라인 사이로 지는 노을을 봤는데 다시 돌아온 현실은 저녁 8시인데 불 꺼진 작은 읍내에 발을 딛자마자 곳곳에 인분 거름을 뿌린 밭에서 바람과 함께 마스크를 뚫고 엄습하는 독한 냄새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곳에서 한철 사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평화로운 산책길은 밭에 뿌린 인분 거름 냄새 때문에 나설 수가 없고, 오후 6시면 일제히 어두워지는 춥고 바람 부는 거리에 혼자 나서는 것이 이젠 망설여진다. 오늘은 점심 먹고 동네 한 바퀴 하면서도 그 역한 냄새에 점심 먹은 것을 토하고 싶을 정도였다. 도대체 어디에 민원을 넣어야 이 동네 구린내나는 바람을 피해 창문 열어 환기.. 2020. 10. 26. 잔잔한 일상 어제 아침, 남 선생님께서 출근하시면서 들꽃을 한 바구니 담아오셨다. "가을 갬성 죽이지~~~요." 내가 천에 그리던 것이 구절초라고 생각했는데 들국화도 아닌 것이 구절초도 아닌 것이 둘을 섞어놓은 형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얀 구절초가 참 예쁘다. 전 학년이 등교하면서 점심시간이 길어졌다. 점심 먹고 가볍게 주변 한 바퀴 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교시 혹은 5교시 수업 없을 때만. 학교 옆 면학정에 처음 올라가서 앉아봤다. 사방에서 오는 바람이 선선하니 좋아서 한숨 자고 싶었다. 호방한 남 선생님은 개량 한복에 버선발로 다리 뻗고 누우셨고 나는 얼굴에 시원하게 불어 드는 바람을 잠시 즐겼다. 낮에 어찌나 더운지 아침에 입고 왔던 트렌치코트며 카디건까지 다 벗어도 얇은 블라우스에 땀이 찬다. 학교.. 2020. 10. 21. 10월 20일 산책길 풍경 일교차가 심한데 어제는 유난히 낮에 더워서 입고 있던 블라우스가 땀에 젖을 정도였다. 퇴근한 뒤 읍내 세탁소 들렀다가 그대로 기숙사에 들어가서 잘까 걸을까 망설이는데 마침 부사감님이 나를 발견하시고는 매일 걸으러 가는 길이 어디냐고 같이 걷자고 하신다. 늦게 나가서 어두워지는데 멀리 걷기도 곤란하고, 빨리 걸어야 운동이 되니까 빨리 걷자 하셔서 눈치껏 적당한 속도로 걷는데도 따라오지 못하고 종종 돌아보면 달음박질하듯 나를 향해 뛰어오시기를 반복하셨다. 산길을 그리 잘 걸으신다는데 다음에 함께 가보기로 한 꽃봉산 정자 가는 길에는 내가 그렇게 뒤처져서 걷게 되겠지. 지곡사 앞 내리 저수지까지는 가지 못하고 지성마을 앞에 등을 밝혀놓은 저수지까지 걷고 돌아왔다. 저녁에 업무 시작하시는 분을 지치게 할 수는 .. 2020. 10. 21. 10월 19일 산책길 풍경 산청읍내에 시외버스 터미널을 기점으로 반대편 주택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길도 익힐 겸 향교가 있다는 방향으로 걸었다. 이 집은 벽에 나무를 덧대어 놓아서 반대편에서 보면 더 눈에 띄는 집이었는데 그쪽엔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앉아계셔서 반대쪽에서 찍었다. 산청 향교 앞에 있는 은행나무 산청 향교 2020. 10. 21. 이전 1 ··· 64 65 66 67 68 69 70 ··· 1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