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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일상 어제 아침, 남 선생님께서 출근하시면서 들꽃을 한 바구니 담아오셨다. "가을 갬성 죽이지~~~요." 내가 천에 그리던 것이 구절초라고 생각했는데 들국화도 아닌 것이 구절초도 아닌 것이 둘을 섞어놓은 형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얀 구절초가 참 예쁘다. 전 학년이 등교하면서 점심시간이 길어졌다. 점심 먹고 가볍게 주변 한 바퀴 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교시 혹은 5교시 수업 없을 때만. 학교 옆 면학정에 처음 올라가서 앉아봤다. 사방에서 오는 바람이 선선하니 좋아서 한숨 자고 싶었다. 호방한 남 선생님은 개량 한복에 버선발로 다리 뻗고 누우셨고 나는 얼굴에 시원하게 불어 드는 바람을 잠시 즐겼다. 낮에 어찌나 더운지 아침에 입고 왔던 트렌치코트며 카디건까지 다 벗어도 얇은 블라우스에 땀이 찬다. 학교.. 2020. 10. 21.
10월 20일 산책길 풍경 일교차가 심한데 어제는 유난히 낮에 더워서 입고 있던 블라우스가 땀에 젖을 정도였다. 퇴근한 뒤 읍내 세탁소 들렀다가 그대로 기숙사에 들어가서 잘까 걸을까 망설이는데 마침 부사감님이 나를 발견하시고는 매일 걸으러 가는 길이 어디냐고 같이 걷자고 하신다. 늦게 나가서 어두워지는데 멀리 걷기도 곤란하고, 빨리 걸어야 운동이 되니까 빨리 걷자 하셔서 눈치껏 적당한 속도로 걷는데도 따라오지 못하고 종종 돌아보면 달음박질하듯 나를 향해 뛰어오시기를 반복하셨다. 산길을 그리 잘 걸으신다는데 다음에 함께 가보기로 한 꽃봉산 정자 가는 길에는 내가 그렇게 뒤처져서 걷게 되겠지. 지곡사 앞 내리 저수지까지는 가지 못하고 지성마을 앞에 등을 밝혀놓은 저수지까지 걷고 돌아왔다. 저녁에 업무 시작하시는 분을 지치게 할 수는 .. 2020. 10. 21.
10월 19일 산책길 풍경 산청읍내에 시외버스 터미널을 기점으로 반대편 주택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길도 익힐 겸 향교가 있다는 방향으로 걸었다. 이 집은 벽에 나무를 덧대어 놓아서 반대편에서 보면 더 눈에 띄는 집이었는데 그쪽엔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앉아계셔서 반대쪽에서 찍었다. 산청 향교 앞에 있는 은행나무 산청 향교 2020. 10. 21.
거제 카페 리묘, 온더선셋 거제 둔덕 카페 리묘(林孝) 그 자리에서 바다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공간을 함께 쓰기엔 불편한 정도의 공간에 주말이어서인지 손님이 자리를 거의 차지해서 그냥 지나쳐왔다. 거제 성포 카페 On the Sunset 주차 관리인이 필요할 만큼 주말 해 질 녘에 가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거제시에서 만든 데크 산책길이 있는 자리에 카페가 생겼고, 카페에 손님이 많아진 뒤에 데크 산책길은 더 먼 곳까지 이어졌다. 해 지는 것을 보기에 좋은 자리 마침 그 시각에 Carol Kidd의 When I dream이 흘러나와서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해 지는 것을 보고 앉아있었다. 2020. 10. 17.
시절 인연이 다한 곳에 다녀왔다. 내 나이 서른이었을 때,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고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던 그분 이야기를 쓰고 나서 두 시간 뒤에 정말 예정에도 없이 그곳에 인연이 있는 어떤 분과 거기에 함께 다녀왔다. 생각한 것이 너무 빨리 이뤄져서 놀라울 정도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혼자라면 섬이라도 갈까 하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망설이던 참에 잠시 바람 쐬러 나가서는 문득 그곳에 한번 가보자는 이야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곳에 가보니 그분이 그곳에 다시 오셨다가 떠나신 지 몇 해는 지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서 그곳의 기운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여전히 평화롭지만, 그 시절과 다른 그곳의 기운이 그간 그곳에 통 발길이 가지 않던 이유를 대변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떤.. 2020. 10. 17.
짧은 가을을 즐겨야지! 통영은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다. 남도에 속하지만 해가 지면 어깨가 살짝 움츠러드는 산청과는 비교가 될 정도로 따뜻하다. 어제저녁에도 반소매 차림으로 나다녀도 될 만큼 통영은 따뜻했다. 가을이 사라지고 금세 겨울이 올 것 같았는데 이곳은 여전히 가을 가을 하다. 주말 내내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까 봐 오후에 해야 할 일을 안고 왔는데 밤에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살짝 꾀가 난다. 이런 좋은 날은 어딘가 가서 걸어야 할 것 같다. 조금만 일찍 생각했더라면 연대도, 만지도 가는 배라도 탔을 텐데...... 갈까 말까...... 내일 아침에 갈까...... 토요일은 늦잠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가고 싶다. 주문한 커피도 한 잔 마셨고....... 2020. 10. 17.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 20대 후반, 나만의 깊은 동굴에서 지낼 때 가끔 뭔가 막히면 그 질문을 밤새 머금고 있다가 날이 밝은 대로 시외버스를 타고 미륵산 그곳에 찾아갔다. 그때 내가 뭔가를 여쭤볼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셔서 그분의 말씀을 많이 따랐다. 내 질문에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답을 해주셨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 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내 의식체계의 상당 부분을 재편성하였을 때,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상당히 단순하고 수준이 낮았다. 복잡한 것을 읽지 않고 단순하게 보니까 계산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많은 것을 대하게 됐다. 그때 그분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 였다. 내 주변의 상황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누구라도 손을 내밀면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고 .. 2020. 10. 17.
따로 또 같이 서로 해 먹은 음식 사진을 카톡으로 공유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주말을 보낸다. 잠들기 전에 통화하면서 "있잖아..... 엄마가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에 나오는 안무에 확 꽂혀서 따라 해보려고 하니까 팔다리가 따로 놀아서 따라 하질 못하겠어. 네가 유튜브 보고 배워서 나 좀 가르쳐줘 봐." 딸은 노래는 들어봤는데 안무는 본 적이 없단다. 링크 하나 보내주고 잡담하다가 갑자기 피곤해져서 전화를 끊었다. 뭘 했다고 이렇게나 피곤할까. 음식 해 먹고 사진 찍는 것 보고 자라서 딸도 자취방에서 해 먹은 음식 사진을 찍어서 보여준다. 예쁜 그릇 보내준 보람이 있네. ㅎㅎㅎ 지난주에 달걀말이 하고 애호박전 부쳐서 갖다 준 것 맛있게 먹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시장 보면서 달걀을 샀다. 애호박도 살 걸 그랬나? 어차.. 2020. 10. 17.
10월 16일 남들은 불타는 금요일이라지만 나에겐 월급이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 그래도 오늘은 집에 가서 뭔가 맛있는 것 먹어야지! 퇴근 40분 전부터 슬슬 가방을 싸고, 시험 문제 내느라 정신없던 컴퓨터를 끄고 얼른 퇴근하고 싶어서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봐야 오늘은 딸도 오지 않고 혼자 있을 텐데....... 어쨌든 얼른 나가고 싶었다. 컴퓨터 꺼놓고 가방 싸놓고 나니 심심해서 책 읽다가 오늘의 셀카도 찍고. 찍어 놓고 보니 신기한 내 옆 모습. 옛날에 턱 깎아 달라, 코 세워 달라고 엄마한테 괜히 떼썼을 때 왜 내 등짝을 후려치셨는지 알겠다. 오늘도 여전히 오 선생님은 힘껏 액셀을 밟으셨다. 국도에서 속도 120은 기본이다. 카트라이더 선수급으로 산청-진주간 국도를 지나 진주 시내를 통과해서 진주 시외.. 2020. 10. 16.
나만의 마터호른 웅석봉 이 동네에서 가장 늦은 시각까지 햇볕을 받는 웅석봉은 흡사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본 마터호른에 뒤지지 않는 이끌림이 있는 멋진 산봉우리다.     오늘도 내리교 건너서 웅석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지성마을 방앗간 옆에 거대한 탈곡기를 거친 벼가 낱알이 되어 커다란 부대에 그득 담겼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밥 값 한다고 간혹 짖는 멍멍이가 오늘은 저 사이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대봉감이 익어가고  하늘은 시시각각 해 넘어가기 전에 바람과 함께 다채로운 그림을 그려 놓는다.              산청 W 글램핑장         글램핑장까지 걷고 돌아왔다. 근처에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도 그간 심적사 방향, 수선사 방향으로 여러 번 다녀오고 글램핑장 쪽으로는 처음 걸었.. 2020. 10. 15.
점심 먹고 잠시..... 햇살이 눈부신 시각에 잠시 나섰더니 이토록 아름답다. 해 질 녘에 같은 길에서 보게 되는 풍경과 사뭇 다르다. 2020. 10. 15.
오늘 저녁에..... 버드나무집 어탕 오늘은 저녁에 혼자 걷는 것 포기하고, 야근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저녁 먹고 주말에 하려던 일 몰아서 하기로 했다. 1인 8,000원. 같은 가격을 받는 내리 식당 된장찌개보다 반찬이 좋다. 좋아하는 시래기 듬뿍 들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사람 속에 있지만 어울리지 않으니 외로운 거다. 다들 자기 일로 바쁘고 퇴근하면 혼자 걷고 혼자 지내니까 마음이 계속 울적했던가 보다. 독서 시간에 또 책 읽다 울었다. 요즘 거의 매일 한 번씩은 운다. 책을 읽지 말아야 하나? ㅋ 저녁에 딸이 학교에서 교수님과 상담하고 나오는 길이라며 전화하며 살짝 울먹였다. 나를 아는 교수님과 상담하면서 근황을 묻고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던 모양이다. 일이 풀릴 때가 되면 풀릴 것인데 어떻게 풀릴지 .. 2020. 10. 14.
10월 14일 산책길에..... 수요일 그림 그리기 대신 해지기 전에 잠시 햇볕 쬐러 나서는 분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작고 노란 국화를 따서 꽃차도 만들고 염색에도 쓴다. 학교 뒤에 산청군에서 운영하는 약용식물 단지에 염색하는 곳도 있다. 은은한 은회색 물을 들일 때 쓴다는 신나무를 쓰기 좋게 패고 있다. 염료로 염색하기 전에 염색하기 좋은 상태로 준비한 갖가지 천과 천연 염색한 상품 구경도 하고 목화로 만든 리스 학교 옆 면학정을 지나서 늘 지나가면서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조산공원 지나서 읍내에 새로 생긴 음식점에 셰프가 키도 크고 잘생겼다며 가보자는 분 따라서 엊그제 지나가면서 나도 스쳐간 음식점에 갔더니 쉬는 시간이다. 한 번 꼭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혼자 카페 앉아 있기 싫어서 지나치던 '솔직한 곰'에서 진한 커피 한 잔. 커.. 2020. 10. 14.
10월 13일 산청 산책길 지리산 둘레길 수철-성심원 구간 중 일부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지...... 2020. 10. 14.
10월 12일 산청 산책길 산청 지성마을 가로수는 석류나무 바람의 손짓 어두워지는 내리마을 2020. 10. 14.
'엥가이' 해 지기 전에 걸으러 가려고 퇴근 시간 맞춰서 연구실을 나서는데 남 선생님께서 냉장고에 넣어둔 떡을 저녁으로 반 정도 먹으라고 하신다. "저, 오늘부터 저녁 굶을 거예요." 두 분이 깔깔 웃으신다. "엥가이......" 진주 토박이 오 선생님께서 나에게 직격탄을 날리신다. '어지간하겠다.'는 뜻이다. '어지간히 잘도 굶겠다.'는 말을 그렇게 하신다. 매일 화장할 때 쓰는 파운데이션 브러시를 집에 두고 와서 하나 사야겠다고 했더니 터미널 앞에 있다는 화장품 가게를 알려주셨다. 산책하고 거기까지 갔다 오니 허기져서 근처 농협마트에 들어가서 엄청나게 망설이다가 오만가지 먹거리를 다 물리치고 옛날 과자 한 봉지만 샀다. 오도독오도독 부셔 먹을 것이 필요하다. 기숙사에 들렀다가 노트북 들고 연구실로 다시 오면서 .. 2020. 10. 12.
귀환 가져온 짐 가방 던져 놓고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 택배 보관대 택배 상자가 내게 준 선물 바지 입을 수 있을 만큼 살 빠지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고무 치마를 하나 더 샀다. 추울 때 아무 때나 걸치고 걸으러 나갈 수 있게 가벼운 외투 하나와 긴치마로 가을 산책 패션 완성! 어제까지 뒹굴뒹굴하던 집이 현실인지 이 기숙사에서의 삶이 현실인지 매번 새로운 삶의 지평을 오가는 것 같다. 2020. 10. 12.
함양 개평마을 닷새 연휴, 사흘 연휴 내내 집에만 있었더니 슬슬 갑갑하다. 산청으로 가는 길에 겨울 이불도 싸가야 하니 차 좀 태워달라고 강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왕에 나서는 걸음에 함양 개평마을에도 가보고 싶었다. 산청에서 30분 남짓이면 갈 수 있지만 대중교통이 워낙 열악한 곳이어서 퇴근 후에 차마 갈 수 없는 가깝고도 먼 곳이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남의 집 담 너머 호박 구경도 하고 자연스러운 담장에 반해서 사진도 찍고 언덕진 산책길로 올라섰다. 언덕 위에 생각지도 못한 논이 있고, 그 곁에 지금은 손님이 없어서 운영하지 않는 것 같은 차 방도 있다. 이 언덕에 서있는 소나무는 다 번호가 붙었다. 큰 수술을 받고 쇠지렛 대도 하나 받치고도 산다. 생명은 이런 것이다. 모질게 살아남는다. 산책길을 다른 코스.. 2020.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