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섬 <2010~2019>218 1월 31일 아침으로 꼭 밥을 먹는 딸의 1식 갈비탕을 한 끼 먹고, 마침 해동이 다 된 새우를 처치해야 해서 곧바로 감바스를 만들어 파스타를 해먹었다. 작은 불고추만 넣은 것보다 청양고추를 하나 넣어준 것이 더 깔끔한 맛이 나서 좋았다. 팬에 올리브 오일 넣고 저민 마늘 볶기 말린 고추와 소금, 후추로 간을 해놨던 새우 넣고 함께 볶기 통영엔 오늘 첫눈이 내리고 있고, 한꺼번에 두 끼를 맛나게 해치운 딸은 기분 좋게 노래방 마이크로 한소절 뽑고 있다. 나도 마이크 좀 건네 받아서 무슨 노래를 불러 볼까? 내가 폰으로 아델 노래를 듣고 있는데 저쪽 방에서 딸이 마침 내가 듣고 있던 아델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 하기엔 좀더 설명이 필요할 만큼 우리는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생각을 공유할 때가 많다. 요리할.. 2019. 1. 31. 국수 먹은 힘으로.....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언젠가 도로확장 공사에 헐릴 위치에 아주 허름한 국수집이 하나 있다. 최근에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 국수집에 갔다. 두어 번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고 딸에게 국수 먹으러 가자고 꼬셔서 오늘은 성공했다. 제주에서 한때 이효리도 단골이었다는 나름 유명한 튀김덮밥집도 집 근처에 있는데 그 집에 밥 먹으러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국수는 혼자라도 먹으러 갈 참이었는데 딸이 오늘은 저도 국수가 당기는지 순순히 따라 나섰다. 온국수 한 그릇, 비빔국수 한 그릇 시켜서 두 가지를 나눠먹었다. 이 허름하고 찾기 애매한 위치에 있는 국수집을 어찌 알고 찾아오는지 평일에도 손님이 이어진다. 우리가 나갈 무렵 들어온 말쑥한 총각 둘이 우리처럼 온국수와 비빔국수를 한.. 2019. 1. 25. 보름달이 뜨는 날 어제가 보름이었다. 오늘 붉은빛이 도는 달이 떴다. 바닷가에 그달이 비치면 물색이 황금빛으로 보인다. 오늘 창 너머로 붉게 떠오른 달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신 늘어놓고, 방충망 너머로 보이는 달이 잘 찍히지도 않는데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혼자 공상을 한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를 만난다. 바닷가를 같이 좀 걷다가 펍에 들어간다. 창가에 나란히 앉아 바다와 달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한다. 2019. 1. 21. 축제 푸른빛이 몸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젊음,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넘치는 에너지를 눈이 시리도록 집중해서 봤다. 다양한 음악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춤이 서툴거나 세련되었거나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10대 소년들의 앙증맞은 춤사위에 연신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보다 덩치가 커도 마냥 귀엽기만 하다. 교실에서 보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게 되어 참 행복한 하루였다. 그들이 가진 다른 에너지들을 눈으로 탐닉하며 머리가 터질 듯 큰소리로 쏟아져 나오는 악기 소리와 삐걱거리는 목소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를 관통하듯 지나가서 온몸이 아프다. 뒷자리에서 자리만 채운 몇몇 어른들과 달리 나는 앞자리로 몇 번씩 옮겨가서 춤추는 걸 구경했다. 보기만 해도 재밌다. 따라 할 엄두는 나지 않고, 그들이 몸으로 표현하는 다채로운.. 2019. 1. 8. 오래된 책을 정리하다가 노트에다 좋아하는 시를 베껴 쓰던 습관이 있었다. 오늘 오래된 책들을 버리려고 정리하다 그사이에 끼어있던 옛날 노트를 발견했다. 그땐 저런 글씨로 시를 베껴 쓰고 읽고 또 읽고 했는가 보다. 대학 다닐 때 공짜로 받은 학교 노트에 좋아하는 시를 베껴 써서 틈날 때마다 혼자 읽어보곤 했다. 나의 청춘, 나의 낭만은 시절마다 또 다르게 이어져 오는 면면한 역사처럼 변함없이 나를 대변하는 한 모습으로 새겨져 남아있는 흔적. 또 이렇게 나를 추억해본다. 그리움뿐이었던 청춘..... 사진으로 남겨두고 이제 삭제해야겠다. 잘 가라 20대의 설익은 낭만아..... 1990년대 일기장에서.... 2018. 12. 25. 지도교수님 정년퇴임행사에 다녀와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서서 오랜만에 찾아간 진양호는 한 장의 수채화처럼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호텔 컨벤션홀에서 지도교수님 정년퇴임 행사가 있었다. 내겐 대학 졸업 후에 25년 만에 대학 동기들을 비롯하여 선후배들을 만나게 한 위력을 가진 엄청난 이벤트였다. 행사가 끝나고 주최 기수 중에 가장 선배인 우리가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자신의 견해와 맞지 않는 화랑세기를 없앴다는 이야기와 미실과 사다함의 사랑과 실연의 상처, 그 집안에 얽힌 비화로 자살한 이야기 등 꽤 흥미 있는 주제로 교수님의 마지막 강연이 있었기에 그에 대해 피드백을 했다. 학교 다닐 땐 인상이 꽤 딱딱하고 견고한 분이셨는데 나이 드시니 웃는 모습이 소년같이 부드러워.. 2018. 12. 24. 춥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다. 눈물이 막 난다. 사람들이 많아서 울다가 들키면 곤란한데 눈물이 난다. 눈물 닦다가 마스카라가 다 닦였다. 판다는 면해보겠다고 열심히 문질러서 눈 화장을 얼굴에 번진 눈물과 함께 다 닦아냈다. 내일 예정이었던 수시합격자 발표가 오늘 오전에 나고 딸이 불합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일시 정지 버튼이 눌러진 것처럼 세상이 멍해졌다. 어쩐지 합격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미 서로 이야기하고 약속한 대로 재수한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좀 합격선이 낮은 학교라도 정시로 넣어보면 어떻겠냐고 말해도 딸은 막무가내다. 내가 대신 공부해서 시험을 쳐줄 것도 아니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여기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내.. 2018. 12. 13. 편지 민석아 토론은 상대방의 반론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날 수업은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발표와 토론의 형태였기에 나는 반론자의 입장에서 네가 주장하는 바의 허점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표현이 아마도 네가 받아들이기에 과했던 모양이다. 이후에 네가 마음이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나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네게 특별한 개인적 감정이 있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 의견에 대한 반론자의 입장에서 토론에 성실히 임했을 뿐이었다고 생각해서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내가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라고 정확하게 표현했는지 '다르다'는 표현을 강하게 하느라 평소의 잘못된 언어 습관으로 인해 너의 의견을 '틀리다'라고 표현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난 네가 법없이도 살 순수한 마음을 가진 .. 2018. 12. 10. 만기 한 달 전 몰입된 상태에서 열변을 토하고 나오면 기분이 좋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보고 나도 거기에 맞춰 뭔가를 이야기한다. 공감하고 교감이 이뤄지는 시간,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제 아침엔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 게 싫었는데, 막상 화장하고 옷 차려입고 밖으로 나와보니 하늘이 푸르고 맑아서 좋았다. 아직은 그리 차지 않은 신선한 아침 공기며 아침을 맞은 얼굴들과 나누는 인사, 1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일터. 이 모든 게 마음에 흡족하다. 이제 한 달 남았다. 한 달 뒤에 27주 적금 만기일이고, 그 적금은 겨우살이나 겨울 여행에 쓸 것이다. 적금 만기일 다음 날은 방학, 방학식과 함께 그동안 즐거웠던 일과는 안녕~ 적어도 두 달은 백수로 겨울을 잘 보내고 .. 2018. 11. 27. 생각을 따라 가다보니 몽트뢰 운동선수로 뽑혀서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운동하러 가면 그날 바로 목덜미 채서 집으로 끌고 가시던 내 부모님은 고지식한 독재자 스타일이었다. 핸드볼 선수로 뽑혔는데 훈련 며칠 못하고 바로 끝났고, 던지기 선수로 뽑혔는데 경기하는 날 합주부라서 합주부 옷 입고 가서 운동복 준비도 못 해서 대회 출전을 못 했다. 하고 싶은 거나, 잘하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허락된 것은 학교 공부뿐이었는데 그 흔한 수학 정석이나 성문 종합 영어 그런 것 한 권 사주지 않았다. 형편이 안 돼서 못 사봤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뭐든 부모님 몰래 하지 않으면 그 빡빡한 기준에 맞춰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집 앞에 문 열면 좁은 해안도로 그리고 바로 바다였다. 집 앞바다에서 수영 안 하고 자란 그 동네 애는 나.. 2018. 11. 26. 어제, 가을 풍경 다른 곳은 눈이 올 것 같다던 흐린 날 오후, 평소에 눈을 돌리지 않던 곳에 빨갛게 단풍 든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흐린 날 혼자 낡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몇 달만에 처음 가보는 대숲을 지나서 그곳에서 올 가을 가장 멋진 단풍을 만났다. 가을 나들이 한번 나가지 못한 내가 내 생활 반경 내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늦단풍. 아무도 찾아와서 앉지 않는 후미진 곳, 그런데 이곳이 이렇게 예쁜 곳인줄 몰랐다. 홀린 듯 이 붉은 색감을 쫓아 으슥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것 같은 그곳의 마른 잎을 밟고 늦은 가을을 즐기며 속으론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를 떠올렸다. 곧장 내 자리로 달려가 디카를 꺼내 들고 와서 마음속으론 숲 속의 요정이 춤추듯 허공을 뱅그르르 돌고 또 도는 그림 속의.. 2018. 11. 22. 11월15일 수능일의 저주 같은 '수능 한파'는 없는 오늘은 창 너머로 들어오는 볕이 따뜻하다. 이른 아침, 딸 키우면서는 처음으로 보온도시락에 음식을 담았다. 우리야 학교 다닐 때 다들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으니 보온 도시락이 일상화되어있었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단체급식을 하니 도시락 쌀 일이 거의 없다. 더구나 보온 도시락을 준비해야 할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분홍색 대용량 죽통에 황기와 약재, 각종 채소와 닭, 전복 등을 함께 삶은 육수로 쑨 죽을 그득 담았다. 전날 밤에 우려둔 작두콩차를 데워서 보온병에 담아두고 평소에 딸이 아침으로 즐겨먹는 가벼운 음식을 준비했다. 수험장소가 거제대교 앞이라 내가 사는 섬에서 다리를 건너 또 다른 섬 거제 앞까지 버스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곳이다.. 2018. 11. 16. 11월 7일 시간의 가치를 지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갈까 생각하기도 하고, 충분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지나기도 한다. 이른 점심을 먹고 오래된 학교 화단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나 학교 담장 허물기를 하며 학교 담장이 있던 자리를 동네로 열린 작은 공원 같이 만든 공간까지 천천히 걸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에서 걸을 곳이라곤 거기뿐이다. 운동장 너머에 있는 벤치 있는 곳까진 교내에선 거의 가는 이가 없다. 이어폰으로 밀린 아침 뉴스를 듣다 음악으로 바꾸고 나만의 휴식을 즐겼다. 하늘은 흐리고 딱히 기분 좋을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프고 힘든 일도 없으니 지금 나만의 가을을 즐길 때다. 곧 비라도 한줄기 쏟아지면 .. 2018. 11. 7. 11월 6일 오늘 퇴근길에 오동통한 볼에 기저귀를 차고 엄마 손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주 귀여운 아기를 봤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딸이랑 그 아기와 엄마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엄마는 아직도 아기가 그렇게 좋아?" "응..... 너무 늦어서 안 되는 줄 아는데 아직도 아기가 너무 좋아서 낳아서 키울 수 있으면 낳아서 키우고 싶고, 한 명 데리고 와서 키울 수 있으면 키우고 싶어...... 아기들은 다 예뻐....." "내가 낳아서 데려오면 네가 키울래? ㅋㅋㅋ" "안 돼!!!! 절대 안 돼!!!!!" 딸이 내 농담에 절규한다 이야기 중에 딸이 심각한 표정으로 오늘 본 뉴스 이야기를 한다. 경기도에서 엄마와 조부모와 함께 살던 3살 어린이가 제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뉴스가 연일 뜬다. 33살이라는 아이 엄마 행방은 .. 2018. 11. 6. 대학 동창 모임 졸업한지 25년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 2018. 10. 20. 사랑의 기술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 받기만을 갈구했던 것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본다. 점심 시간에 볕을 등에 따뜻하게 받을 수 있는 화단 한 귀퉁이 낡은 의자에 앉아 이어폰으로 노래를 몇 곡 들었다. 노래 가사가 마음에 꽂힌다. 내 부족함으로 상처를 준 일이 생각나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났다. 눈물이 화단 마른 흙 위로 뚝뚝 떨어진다. 이제는 돌이켜 생각해봐도 아무 소용없다. 나는 충분히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그를 알기는 해도 사랑하진 않았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주는 관심과 사랑을 받아 삼기키만 했다.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있었지만 알고는 있었다. 흘리고 받지 않은 듯 했지만 나는 그 끈기와 온기를 느끼고 알고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2018. 10. 15. 노래를 듣다가 가요를 듣다가 기억의 미궁으로 미끄러진다. 이문세의 옛사랑을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꽃다운 청춘은 이미 지난 지 오래고 꽃다운 중년은 딸 키우느라 다 가고 이젠 이도 저도 아닌 경계 지점을 서성이는 나이가 됐다. 어제 산책길에 그 나이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이야기했다.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해봤다. 어쩔 수 없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이일 거라고 대답했다. 또 그럴 것이다. 자신을 위하는 선택보다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하고 괴로워하고 원망하면서 뒷수습하느라 낑낑거리며 내 인생은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후회하면서도, 다른 선택을 했을 자신에 대해 그려보면서도, 이게 나니까. 어제 낮에 부서 모임으로 함께 점심 먹고 카페에서 예쁜 꽃 사진 찍느라 몰입해 있는 나와 내 새 여자.. 2018. 10. 11. 추석 달 사진 해마다 같은 옷 입고 나가서 찍는 추석 사진. 이 옷은 올해 마지막으로 내년엔 다른 옷으로 바꿔 입어야겠다. 어제는 날이 흐려서 달 사진을 못 찍어서 오늘 딸이랑 함께 저녁에 찍은 사진. 2018. 9. 25. 이전 1 2 3 4 5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