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섬 <2020~2024>/<2020>177 오늘은...... 옛날엔 너무 심심해서 책 읽고 공부를 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젊어서 느끼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남이 먼저 얻은 지식을 책으로 얻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부모라는 큰 기둥에 매어서 보이지 않는 줄이 허락하는 반경을 넘어갈 수 없어서 그 좁은 세계에 갇혀 지냈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도 줄 수 있다는데 나는 책으로 배운 사랑을 딸에게 주며 잘살아왔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른 생활을 내 방식대로..... 딸 대학 보내는 것까지만 목표로 삼고 살았더니 이제 한시름 놨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풀리고 의욕도 사라진다. 스스로 뭔가를 계획하고 하루를 허망하지 않게 만들어가는 다른 원동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헙수룩한 나를 누가 좀 .. 2020. 6. 12. 산책길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비 온다는 일기예보만 없었어도 이번 주에는 혼자라도 제주도에 한 번 가볼까 생각했다. 딸이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를 보더니, 제주도는 목요일부터 장마처럼 계속 비 내릴 거란다. 비 안 오는데......ㅠ.ㅠ 비 안 오는데 집에만 있으니 살짝 약 오른다. 동네 산책이라도 해야지...... 바닷가에 나서니 언제든 비가 쏟아져야 할 정도로 대기가 습하다. 젊은 남자 사람 넷이 앞서서 걸으니 나 혼자 걷는 것보다 어쩐지 덜 심심하다. 근처 호텔에 단체 세미나를 온 모양이다. 우리 동네는 저런 젊은 이 시간에 산책하는 젊은 남자 사람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젊은 남자는 이 동네를 떠난다. 어쩔 수 없이 혼자 걷던 길이었나..... 사람들 많이 마주치는 것 피하려고 인가가 없는 길을.. 2020. 6. 12. 좋은 사람 만나고 싶다...... 누군가 마음을 꺼내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편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좋은 세월을 나는 그냥 흘려버리고 있구나...... 이물감 들지 않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이야기하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겁이 많아서 실수할까 봐 그래서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을 후회하게 될까 봐 게시판에 낙서만 했구나...... 진작에 누구든 만났어야 했다. 오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참 초라해 보인다. 더 늙어지기 전에 누구든 만나서 사랑해야겠다. 나도 이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정승환의 감성에 반해서 듣고 또 듣는 노래 2020. 6. 11. 엄마는 바보야 올해 대학생이 된 딸은 주중에 온라인 수업 몇 시간 듣고 팀별 프로젝트 수업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같은 과 친구와 주중에 몇 번 접속해서 화상회의를 한다. 어제 갑자기 흥분해서 저희 과 친구 이야기를 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어도 화상으로 대면한 것이 전부인데도 벌써 이야기할 거리가 생긴 모양이다. 무슨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가 자기 반 친구 중에 한 명이 입시에 합격했는데도 울어서 절교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단다. 입시 결과 발표 나는 즈음에 합격과 불합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고3 교실의 분위기 때문에 합격해도 친구들 앞에서 너무 기뻐하거나 혹은 떨어져서 마구 울어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지 말라는 담임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단다. 그런데 그 친구네 반의 어떤 학생이 울어서 떨어진 줄 알았는데 합격했.. 2020. 6. 8. 엄마는 뭔가 달라..... 여행길에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런데 시선을 두고 쳐다보게 되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나이가 몇이거나 삶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 맑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 좋다. 연화도에서 육지로 나갈 배 시간이 한참 남아서 잠시 앉아서 기다리던 매표소 옆 벤치에 때가 되니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슨 자신감인지 뽕짝을 볼륨 최대치로 올려서 틀어놓고 춤도 춘다. 그렇게 노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소리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딸이랑 함께 외출해서 자주 가던 백화점에서 미처 한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나 많아 봐야 두세 살 된 아이를 태운 유모차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 나를 처음 보는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고 나에게 잘 보여야 할 의.. 2020. 6. 4. 서른 그리고 쉰 서른은 참 무서운 나이였다. 20대까지 열심히 읽던 많은 책에 여자 나이 서른이 넘으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이 든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써놓은 것을 잘못 읽고 오해하였다. 마흔 넘으면 정말 늙은이가 되는 줄 알았다. 옛날 사람이 옛날 사람 기준으로 혹은 자신의 좁은 소견을 일반화하여 쓴 것이다. 그때는 작가는 다 똑똑한 줄 알았다. 그래서 서른까지만 짧고 굵게 살다가 죽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고, 10대에 서른 이후의 삶을 설계하지 않았다. 10대엔 그런 생각을 할 만큼 나는 좁은 세상에 갇혀 살았다. 서른 즈음에 내 인생에 닥친 도미노식 풍파에 휘청이다 판단 착오로 아무나 나 좋다는 남자 만나서 아줌마로 정착해야 할 것으로 착각했다. 그때처럼 나이 오십이 넘으면 금세 늙.. 2020. 5. 30. 장금이 병 딸이 요즘 부쩍 송광사 길상식당 이야기를 한다. 거기서 먹었던 비빔밥, 김 장아찌, 더덕장아찌, 더덕구이 등 맛있게 먹은 음식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같이 가자고 해봐야 코로나 19 전염력이 무서우니 아직은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집콕 생활에 익숙해진 딸의 뻔한 대답이 기다릴 뿐이다. 재난 지원금 카드로 동네 마트에서 더덕 한 봉지 사다가 오늘 저녁에 더덕구이를 만들었다.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한 것인데 꽃게 된장국을 곁들여서 밤늦게 밥 한 공기를 먹었다. 팔아도 되겠다는 말을 하는 것 보니 오늘도 내 음식이 맛있었나 보다. 같은 과 친구와 카톡을 하더니 마우스가 부서지도록 클릭하는 그 게임을 한다. 같은 시간에 접속해서 같은 팀으로 전투하는 게임을 뒤늦게 시작한 딸이 요즘 시간만 나면 저.. 2020. 5. 30. 다음 새 블로그 블로그 새 에디터며 새 환경에 아직 적응이 안 된다. 글을 편집하려면 블로그 관리 편집 모드에서 다시 찾아야 하는 것도 번거롭다. 작년 글을 수정하고 저장했더니 날짜가 현재로 바뀌면서 언제 쓴 글인지 구분이 안 되는 문제도 있다. 아침에 일찍 깨서 움직여야 하는데 늦게 잠들고 늦게 깨서 하루를 시작하니 밖에 나가려는 날엔 뭔가 꼬인다. 오늘은 아침에 일찍 깨어 혼자 욕지도 가는 배를 탈까 말까 망설이다 다시 잠들었다. 딸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오후에 온라인으로 같은 과친구와 발표할 문제에 대해 회의를 해야 한단다. 딸의 대학 첫 학기는 코로나 19 덕분에 강의도 회의도 온라인으로 시작되었다. 2018년 6월에 혼자 연화도에 다녀왔다. 그때는 불쑥 아침에 나설 에너지도 있었고, 무엇보다 딸이 고3이어서 아.. 2020. 5. 28. 도산 일주도로 걷기 오랜 자발적 감금 해제 너무 오래 집안에 갇혀 지냈더니 확~찐자가 되었다. 낮에 깨어서 밤낮 바뀐 것도 바로잡고 좀 걷기로 했다. 집에서 시내버스로 한 시간 거리 시내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서 다음 버스 기다렸다 타느니 걷는 게 나은 동네에서 천천히 걷기. 오랜만에 갔더니 카페 영업은 하지 않고 펜션 손님만 받는다. 바닷가에 눕다시피 할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있어서 바다 보고 멍하니 쉬다 올까 하고 갔더니...... 덕분에 더 많이 걷게 됐다. 걷다 길가에 보이는 꽃마다 들여다 보고 말을 걸었다. "참 예쁘네......" 아주 가끔 지나는 차 외엔 걷는 사람은 아예 없는 한적한 곳, 나도 처음으로 걸어본 길 전망대에 있는 그늘에 앉아 잠시 숨 돌리다보니 누군가 바다를 보고 있다. 전용 보트장까지 있는 펜션.. 2020. 5. 22.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공포 살아있는 존재가 마주해야 하는 공포 중에 가장 근본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기 위해 누구나 노력할 것이다. 생존과 관련된 공포를 제거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의 존재가 필요하다. 딸이 어릴 때, 나도 초보 엄마에, 경력 단절에, 건강 문제까지 겹쳐서 꽤 오랜 기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꽤 오랫동안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은 현실에서 살았다. 그때 나에게 반작용의 힘을 내게 한 조언은"그럼 몸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나?"라는 말이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내 몸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쉽게 하는 사회의 열악한 성 의식과 도덕적 해이에 치가 떨렸다. 의도적으로 내 삶을 연명할 의지가 없음을 표명하기 위해 열흘을 굶어본 .. 2020. 5. 2. 3월 11일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장 가까운 섬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어제 밤늦게 딸이 야식을 청해서 함께 먹고 이야기하다가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하게 됐다. 그간 우리가 함께 살아온 동안 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겪은 우여곡절이며 좋았던 이야기, 여행 이야기, 맛집 이야기를 하.. 2020. 3. 11. 연대도 만지도 둘레길 걷기 10월 4일 딸이 혼자 공부하는 동안 함께 여행을 갈 수 없어 내내 집안에서만 지내다 오랜만에 바람 쐬러 가까운 섬에 다녀왔다. 배 타고 15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섬이라 한때 자주 갔는데 오랜만에 갔더니 새로운 둘레길이 생겼다. 섬에서 또 다른 섬을 바라본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데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태풍이 지나갔다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너무나 완벽한 날씨다. 동백나무가 꽤 빽빽한 둘레길을 걸어 만지봉으로 올라갔다. 통영 주변 섬에는 유난히 동백숲이 많다. 빛이 조금씩 드는 곳으로 눈길이 간다. 밝음과 따뜻함, 에너지....... 햇볕에서 까슬까슬하고 따뜻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연대도로 건너와 만지도를 바라본다. 참 작은 섬이다. 이 다리가 놓이지 않았을 땐 이 가까운 섬도 배를 타고 건너다.. 2019. 10. 5. 졸업식 2019년 2월 11일 졸업식 나의 모교이기도 했던 여고를 딸도 졸업했다. 나는 40회 졸업생 학교 본관 공사 중이라 달리 사진 찍을 데가 없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웃에 살아서 알게 되었던 딸 친구 엄마랑 같이 사진을 찍었다. 딸이 셀카를 찍다가 전신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해서 기념사진 한 장 못 남길뻔했는데 혜윤이 엄마가 도와줘서 한 장 남겼다. 딸 친구네는 오빠 친구들이 무더기로 와서 같이 축하해주고 기념사진도 재밌게 찍었다. 저 학생들 모두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자리는 친구네 아들과 딸, 그 아이 친구들까지 12명이 모여서 아주 신나는 분위기였다. 전날부터 잡힌 저녁 약속이 있어서 집에 와서 잠시 쉬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저녁은 나현이네 가족들과 함께...... 일식집에서 코스요리를 .. 2019. 2. 11. 어느새 졸업..... 내일 고3 딸이 졸업하는 날이다. 중학교 졸업한지 엊그제 같은데 금세 3년이 지났다. 꽃다발은 하나 사줘야 할 것 같아서 꽃 주문하러 카페에 다녀왔다. 내일 아침 일찍 찾으러 가기엔 거리가 멀어서 사다가 욕실에 담가놓고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정도 큰 꽃다발을 준비할까 고민하다 마음은 가격순이 아니라 생각하고 작은 걸로 샀다. 졸업하고 친구들과 헤어지고 교복을 벗게 되는 섭섭함은 맛있는 것 사주는 걸로 떼워야지. 혼자 저 어린 것을 업고 빈손으로 길바닥에 나앉았을 땐 어찌 키우나 막막했는데 그 사이 세월이 이렇게나 지나가서 벌써 스무 살이 되었다. 그동안 혼자 딸 키우느라 참 수고 많았다. 저 꽃다발은 딸에게 주는 거지만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기도 하다. 3년전 중학교 졸업식때 사진을 꺼내보며 잠시.. 2019. 2. 10. 고통 피하기 고통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피하거나 극복할 것인가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예민한 성격인 나에겐 참으로 큰 과제였다. 대문만 열면 좁은 도로를 끼고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태어나서 살았다. 도로변에 살아서 낮은 담 너머로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이들이 우리 집 마당을 누구나 볼 .. 2019. 2. 8. 이전 1 ···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