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섬 <2020~2024>/<2020>177 ............. 그리워도 그리워해서는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눈물 나고, 담담해지지 않는 이는 항상 가슴 속 어딘가에 남아있고, 어떤 이는 이제 그립지 않게 되었다. 그립다는 것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흔적이 남아있기에 그립기도 한 것일 텐데 추억이라 할만한 것이 너무 적어서 오래 기억하고 싶어도 세월 따라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잊을 수 없지만 잊어야 하고, 떠올리면 괴로움이 줄줄이 이어지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은 그대로 잠금장치도 없이 방 하나 만들어 깊숙이 넣어두었다. 어린 시절부터 길게 이어진 기억을 강제 감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억 속에 있는 존재도 아닌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무심코 4층까지 하루에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스크 속에서 간신히 내뱉고 들이마시는 숨결에만 집중하고 걷다.. 2020. 9. 25. 9월 23일 기숙사 휴게실에 느려터진 컴퓨터 말고 인터넷 연결된 컴퓨터 사용 가능한 공간을 알게 되었다. 이 정도 속도면 사용할만하다. 다만 학생들 틈에서 PC방에 앉아서 컴퓨터 쓰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게 신경 쓰일 따름이다. 앞으론 옆 건물 4층 사무실까지 올라가지 않고 가끔 여기서 온라인 클래스 관리도 하고, 연수도 들어야겠다. 이번 주말 지나고 화요일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딸도 이번 주엔 집에 가지 않는다고 하고, 나도 일요일에 이곳으로 왔다가 다시 화요일에 가야 하니 번거롭다. 이번 주엔 집으로 가지 말고 어디든 다녀와야겠다. 2박 2일짜리 일정으로 갈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다. 혼자면 더더욱..... 글 쓰다가 내가 혼잣말한다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됐다. 어제는 아무도 아는 사람 .. 2020. 9. 23. 잠시 가을바람 쐬러..... 오늘은 오전 수업뿐인 날, 조퇴하고 같은 연구실 쓰는 선생님의 배려로 조금 떨어진 동네 구경을 나섰다. 칸막이에 둘러싸여 매일 먹는 단체 급식과 다른 음식을 좀 먹어야겠다. 점심 안 먹고 나와서 밖에서 같이 밥 한 끼 먹으니 어쩐지 살 것 같다. 1인 8,000원 코다리구이 식당은 산청에서 40분 달려서 간 거창 마리면 유원지 근처 서현 다례원 다례원 주인이 일본차를 배우기도 해서 일본식 차방도 있다. 날씨가 좋았으면 산청 덕산서원 근처에 있는 앞자리 선생님네 민박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 계획이었다. 오늘 날씨가 흐려서 덕산은 맑은 날이 더 좋을 것 같다며 장소를 바꿔서 내내 실내에만 있었다. 손님이 우리뿐이어서 말차를 주문해서 마신 다음에 내주신 발효차를 계속 마셨다. 속이 따뜻해지고 편안한 게 .. 2020. 9. 23. 경호강 해넘이 9월 22일 산책길 풍경 산청군 산청읍 경호강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즈음에도 저렇게 마지막 빛을 내뿜으며 찬란하게 반짝일까. 강물 위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흐릿해져서 겨우 운신하다 눈을 감게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마무리는 간결하면서도 눈부신 저 빛처럼 집약적이고 완결된 지혜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인생의 후반전은 무엇이 펼쳐질까 두려움에 움츠린 자세가 아니라 무엇이든 받아내고 건너가겠다는 뻔뻔함이 있어서 편안하다. 순간이 교차하며 탄생과 성장과 쇠락이 공존하고, 과거도 미래도 없는 현재가 모든 것을 품고 있다. 돌아보지 않아도 고개 내밀고 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나를 깨어있게 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2020. 9. 23.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니 한 일주일 남짓 지나는 동안 내가 쓴 글이나 찍은 사진 그 외의 것을 들여다보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디 문제가 있는지 의아한 지점이 꽤 있었다. 9월 21일 3학년만 먼저 시험 치고, 낮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어 통제할 당번으로 내가 첫 번째 당첨. 누군가 그랬다. 못한다, 안 한다고 고개 저을 수 없는 가장 약한 고리만 공략해서 걸린 거라고...... 어쨌든 4시간 저 자리 앉아서 퇴근 후에 초과근무도 걸지 못하고, 밀린 연수를 들을 수도 없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건 혼자 잘 노는 것이다. CCTV 있는 자리에서 졸기 민망해서 책 보고 글도 베끼어 썼는데 하필 저 문장을? 역시...... 어디 아픈가? 사춘기도 아니고,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에 이런 증상도 생기.. 2020. 9. 22. 가을밤 글을 좇는 것은 생각을 좇는 것이다. 깊이와 에너지가 있는 글. 결국, 그 정신적인 에너지를 찾아 헤매는 것과 비슷하다. 집에 돌아오니 편안하다며 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원한 바람에 실려 오는 풀벌레 소리가 잔잔한 파도처럼 귓가에 찰랑거린다. 너무 일찍 숙제를 끝내서 심심해진 방학처럼 개학만 기다릴 수는 없으니 물구나무서기라도 해야겠다. 머리에 피가 쏠리면 미처 털어내지 못한 묵은 생각의 찌꺼기가 절로 떨어져 나갈지도 몰라. 2020. 9. 20. 오늘 뉴스를 보고..... 잊고 있던 사건 판결에 대한 뉴스가 뜬다. 친부모거나 친부모가 아니어도 아이를 양육하는 이는 아이가 자라서 똑같은 어른이 될 시차가 약간 있는 나와 같은 사람임을 생각해야 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몸집이 작다고, 나보다 힘이 약하다고 함부로 대해도 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어떤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작은 가방에 갇혀 부모의 손에 의해 그토록 비참한 죽음을 맞을 이유는 없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내 사지가 오그라지고 가방에 갇혀 밟히고 질식할 것 같다. 무엇보다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아동보호와 관련된 법률을 재정비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대 받으며 자라는 아이가 없도록 우리 주변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자녀를 양육하는 이 모두가 갖추어야 기본적인 소양에 대해 다음 주 수업 시간에 한 번 .. 2020. 9. 17. 산 속에 이런 화장실이~ 근처를 지나다가 누구든 들어갈 수 있게 절 바깥에 있다. 이렇게 현대적인 구조물에 이렇게나 단정한 사찰 화장실을 본 적이 없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같은 화장실 입구에 슬리퍼를 준비해놨다. 신발 벗고 슬리퍼 신고 들어가는 화장실. 산길이라도 걷다가 온 방문객이라면 젖은 흙이나 기타 등등 화장실 바닥을 밟아서 지저분해질 수 있는 여지를 줄여서 화장실 관리와 청소에 불편함을 덜기 위함이겠지. 모두에게 개방한 공간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끗하게 사용하기! 산청 수선사 화장실 내부도 아주 깨끗하고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게 가족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사찰 화장실이라면 연상되는 퐁당 빠지는 무서운 재래식 화장실이 아니라 잘 관리된 카페 화장실처럼 깨끗해서 기분 좋았다. 2020. 9. 15. 하늘빛이 수시로 변하는 곳 9월 14일 점심 먹고 나오면서 본 하늘은 이랬다. 2020. 9. 15. 9월 13일 통영 - 진주 - 산청, 한동안 매주 오가야 할 길. 마스크를 벗을 수 없으니 버스에서 내리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주말에 밀린 집 청소 하느라 진을 뺐더니 기숙사에서는 걸레질도 하기 싫었다.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깨진 보일러 파이프 교체한다길래 어질러진 집을 급히 치우느라 헤매다 보니 우리 집에 정말 잡다한 짐이 많긴 하다. 긴 소매 옷 챙겨오느라 또 짐을 많이 들고 왔다. 딸도 나도 둘 다 옷 욕심이 많다. 새로 산 옷이 아니면 철 지난 옷 중엔 다시 입고 싶은 옷이 이상하게 별로 없다. 옷 가방 때문에 터미널에서 처음으로 기숙사까지 택시를 탔다. 걸어서 15분~20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길이 울퉁불퉁하게 굴곡진 부분이 많아서 여행용 가방까지 주렁주렁 들고는 밤길 걷기는 어려울 것 같았.. 2020. 9. 14. 9월 11일 내가 먼저 진주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진주 시내 두 곳 경유지 중 한 곳에서 딸이 타고 함께 집에 가기로 약속하고 금요일 오후 늦게 통영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딸을 만났다. 옆자리에 앉자마자 무엇이 그리 급한지 흥분한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딸은 학교에서 하는 스마트 근로를 자신이 속한 단대 건물 입구에서 코로나 19와 관련된 QR코드 확인 작업과 연락처 표기를 돕고 확인하는 일을 한다. "엄마, 있잖아...... 나는, 집에서 엄마가 컴퓨터랑 스마트 기기를 너무 잘 다뤄서 그게 너무 익숙한데 말이야. 학교에서 엄마 또래 정도 되는 교수님이 휴대전화 전원도 켜지 않고 QR코드 찍는다고 들이대면서 안 된다고 막 화냈어." "그럴 수도 있지...... 휴대전화 안 켠 줄 몰랐겠지." "아니, 그게 .. 2020. 9. 14. 9월 10일 며칠 내리 탄수화물만 먹어서 마트에서 산 컵라면이나 김밥과는 다른 메뉴를 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 저녁에 읍내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에 찾아갔다. 근처에 인가도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다. 대체로 식생활 물가가 비싼 곳이어서 다른 식당은 돈가스가 기본은 12,000원 정도라는데 여기는 8,000원. 레스토랑은 아니고 한식당인데 돈가스도 판다. 이름하여 한식 레스토랑 '내리 식당' 며칠 전 딸이 친구와 학교 앞에서 맛있게 먹었다며 보내준 돈가스 사진. 이거 보고 나도 어쩌면 돈가스 생각이 났나 보다. '내리 식당' 돈가스는 양도 많고 맛도 괜찮다. 소스에 땅콩을 부숴 넣어서 씹히는 맛도 있고 그럭저럭 어지간한 동네 돈가스집에 밀리지 않는 맛이다. 튀김 상태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고기 적당히 두꺼워.. 2020. 9. 11. 9월 9일 오전에 한바탕 비가 쏟아진 뒤, 오후에 창밖을 잠시 내다보니...... 김밥 먹고 싶어서 이 동네 추천 분식집을 찾아 시장가던 길에...... 차와 국수를 팔던 집이라는데 요즘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 찾아간 시장 분식집은 이 동네에서 유명한 집이라는데 손님이 없어서 장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마트에 들러 아쉬운 대로 김밥을 샀다. 간단하게라도 뭔가 만들어 먹고 싶은데 음식을 해 먹을 수 없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저녁 먹고 그대로 퍼져 있자니 인터넷 안 되는 기숙사의 밤이 길 것 같아 동네 한 바퀴~ 이곳은 낮보다 밤에 더 아름다운 곳 저 길은 사람도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어서 혼자 걷기 무서워서 다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퇴근 전 사천 걸음, 퇴근 후 만 걸음 땀 많이 .. 2020. 9. 10. 최적화 딸과 함께 사는 집에 방이 세 개 있다. 방마다 이름도 있다. 우리 모녀의 옷이 온통 차지한 옷방, 딸내미 사진이 벽에 걸린 딸내미 방, 책장과 책상과 컴퓨터뿐인 공부방. 내 방은 없다. 성장기에도 4남매가 방 한 칸씩 차지할 수는 없어서 여동생과 방을 같이 써서 사생활이란 것이 없었다. 대학 다닐 때 하숙방도 룸메이트가 있었다. 다수가 함께 모여 지내는 공동생활 공간이기도 하고, 몇 달만 누릴 공간이지만, 기숙사의 내 방은 온전한 나만의 공간은 처음이라는 의미를 두고 조금은 애착이 생긴다. 어제 짐 풀어놓고 시작한 가구 자리 옮기기, 공간 활용을 위한 최적화라기보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위한 최적화가 되겠다. 1. 이렇게 배치한 것은 냉난방 조절기가 가깝고, 머리를 두는 방향이 남향이어서 선택한 것. 2... 2020. 9. 8. 분노조절 오늘 뇌관이 드디어 터졌다. 제때 터뜨리지 못한 화가 엉뚱한 시점에 터져 나왔다. 오래 고여있다가 사라지지도 다듬어지지도 않은 감정이 불끈 올라온 것이다. 왜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도 결국 내가 잘못한 것으로 귀결되어야 하나? 그 전엔 그 화를 놓아버릴 수 없는 것인지. 잘못된 일을 머릿속에서 해결하는 데 나를 힘들게 한 당사자는 존재하지 않고, 모두 내 탓이 되고 만다. 내가 어리석은 탓이고, 내가 사람을 믿은 탓이고, 하필 거기 나간 탓이다. 이런 게 너무 싫다. 그간 참았던 생각이 순간 터져 나와서 조율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놓고 욕하는 댓글을 썼다. 물론 비밀 댓글로 썼다가 지웠지만, 비공개 댓글을 당사자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끝내 사과하지 않고, 사람을 우습게 보고 우습게 만든 그에 대한.. 2020. 9. 6. 오지랖 온라인 카페 게시판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는 나 혼자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서다.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어지간히 봐서 딱히 궁금한 점은 없지만, 여전히 생각하는 바에는 차이가 더러 느껴진다. 오늘 유머 게시판에 누군가 고작해야 한 돌 정도 지난 아이가 손톱깎이를 잡고 자기 발톱을 깎는 시늉하는데 손과 발이 박자가 맞지 않아서 자꾸 어긋나는 짧은 영상을 귀엽다며 올려놓은 것을 봤다. 내 눈에는 위험천만해 보이는데 그냥 그 어설프게 손발을 놀리며 손톱깎이를 가지고 노는 것이 귀엽다는 것이다. 그 아이 손에 쥐어진 손톱깎이로 자기 발가락이라도 제대로 집었다면 위험하기 그지없는 상황.. 2020. 9. 5. 딸은 영상 세대 책 보기를 돌같이 하는 딸은 영상 세대, 세 살때부터 컴퓨터 만지고 놀았으니 오죽하랴. 올여름에 소설책, 수필집 종류대로 사놓고 책상 위에 보이는 자리에 둬도 책장을 한 번 넘기지 않는 딸에게 사준 책. 대학 강의 듣는 데 필요한 책 사면서 한 권 사서 안겨줬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아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모르는 게 많다. 우리말 어원사전을 비롯하여 이재운 선생님께서 내신 우리말 시리즈를 선물 받아서 가지고 있지만, 딸이 거의 만지지도 않는다. 그 책은 내가 가지고 이 책은 딸에게 들려서 보낼 참이다. 표지가 눈에 띄어서라도 한 번쯤 더 보게 되지 않을까? 외국인 이름이 길게 나오는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외국 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소설은 20대 중반까지 읽고 거의 끊었다. .. 2020. 9. 5. 고기 반, 김치 반 김치찌개 이번 주말을 기해서 앞으로 우리 집은 당분간 빈 집, 그래서 냉장고에 든 식자재를 털어서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며칠 전부터 딸이 집을 떠나 있어서 사놓고 안 먹은 것 중에 양념갈비 한 통, 김치 한 통 다 털어 넣고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양념갈비는 간장 양념이 너무 오래 진하게 배서 구워 먹기엔 짜다. 진한 멸치 육수에 갈비와 김치를 넣고 푹 고았더니 맛은 괜찮다. 하필이면 맛있고 비싼 조선호텔 김치 한 통 남은 거 고스란히 퐁당, 해물 된장에 넣으려고 샀던 순두부까지 일단 다 털어 넣고 한솥 끓였다. 달걀 남은 거 다 깨서 달걀찜도 한 통. 일요일까지 다 먹을 수 있겠지? 그것보단 주말에 내내 김치찌개만 먹어야 하겠구나...... 2020. 9. 4. 이전 1 ···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