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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누구라도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이 꼭 그랬다. 속에서 미처 끄집어내지 못한 말이 가슴 한쪽에서 달그락거렸다. 천천히 걸어서 분수대까지 갔다. 누굴 위한 분수 쇼인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곧 비가 쏟아질 듯한 흐린 하늘을 향해 무지개 같은 물줄기가 피어오른다. 얇은 유기농 막대사탕을 깨 먹던 느낌이 문득 떠올랐다. 갑자기 그 막대사탕이 먹고 싶어서 친구랑 코스트코에 가서 한참 뒤져서 찾아내어 기어코 막대사탕 한 봉지를 사다 놓고 물릴 때까지 깨물어 먹었다. 처음엔 입안에서 살살 녹여 먹다가 마지막엔 꼭 깨물어 먹는 습관이 있다. 분수 색깔을 보고는 막대사탕 생각이 났다. 같이 사탕을 사러 갔던 친구도 떠올랐다. 이젠 이유 없이 전화를 할 수도 없다. 비가 곧 쏟아질 듯한 하늘에 이미 햇.. 2018. 8. 31.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2003년 8월 8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화양연화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언제일까.....  영화를 보다가 영화 속에 나오는 음악에 매료되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음악이 수록된 음반을 구하여 듣는 일은 있었지만, 음악을 먼저 듣고 그 음악에 이끌려 영화를 보게 되는 일은 드문 일이다.   선물 받은 CD에 수록되어 있던 곡 중 유난히 내 감성을 자극하던 그 첼로 연주곡을 반복해서 듣다가 급기야 언젠가 보다가 끝까지 보지 못하고 덮었던 영화를 찾았다. 영화 '화양연화'를 인터넷 상영관에서 뒤져서 피곤한 밤눈을 비벼가며 보았다.   저 음악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인지 궁금해서였다. 이 미묘한 느낌의 연주곡. 애달프고 시린 것을 담담하고 일상적인 색채로 느껴지게 만든 이 곡이 애절한 것보다 더 나를.. 2018. 8. 29.
편식 2004/10/04 02:23 관념일 뿐인 관념과 정신의 영역에 자리만 차지하는 괴물 같은 지식을 탑재하는 항구에는 정박하고 싶지 않다. 멀리서 불빛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그것이 깊은 뿌리 없는 잔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하면 쉽게 떠난다. 사람들이 매료되는 여러 종류의 지적 부유물 중에 가끔은 겉멋에 취한 발림도 있다. 내가 피울 수 없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가끔 묘한 눈빛으로 허공을 한 번씩 주시하던 혹자의 반항기 섞인 시선을 멋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나와는 다른 색채를 가진 사람의 향기를 쫓아 넋 나간 듯 쳐다보다 질투와 부러움이 뒤섞인 시선을 감추려 애썼던 적이 있었다. 정체성 없는 껍데기 지식인의 유창함이 세상을 구원할 수 없어도 현혹할 수는 있다. 문학이라는 이름을 내세우.. 2018. 8. 29.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작년 여름에 사들였던 통 넓은 블라우스를 꺼내 입어보니 임신복 같아서 입을 수가 없다. 작년 여름엔 어떻든 최대한 가릴 수 있는 옷을 사야만 했다. 해마다 조금씩 알게 모르게 불어난 살이 엄청나서 거울을 보기도 싫을 정도였다. 딸 낳기 전에 50kg 정도의 마른 몸을 유지하고 살았다.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아도 대체로 늘 날씬했다. 그래서 먹는 것에 구애 받지 않고 먹고 싶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정도였다. 기초대사량이 적어지고 움직이는 일도 줄어들어서 그런지 먹는 대로 살이 찐다. 스무 살 때와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그때와 비교해서 15kg 이상 찌니까 사람이 정말 달라보였다. 최근 들어 BMI 지수 고려해서 적정치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찬바람 나면 운동 좀 하리라 생각하고 그럼 지방비율도 더 줄.. 2018. 8. 7.
B에 관한 기억 2006/09/28 문득 하숙집 생각이 났다. 6년이나 살았던 그 대학촌의 하숙집. 1학년 가을 학기 즈음 내가 살던 하숙집에 월식하러 왔던 유난히 얼굴 하얀 그 남자.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은 모조리 아무개 오빠로 불렀던 나는 나이에 비해 어리숙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맹탕이었다. 그래도 맑고 나름대로 깊이 있어 보였던 나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여드름 때문에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던 탓에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할 정도로 소심했다. 문득 음악을 듣다가 그 하얀 손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계사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하숙집 식구들이 많아서 밥을 먹을 때마다 식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지만 그는 유난히 반짝.. 2018. 8. 3.
쇼핑은 힘들어 어제는 아침 일찍 조조할인 영화를 보고 점심 먹고 뜨거운 하루를 잘 보내고 왔음에도 밤엔 그 피곤한 몸으로 심심하기 짝이 없다. 밤에 잠들기 전에 누워서 한참을 생각했다. '내일은 꼭 누구라도 만나야겠다..... 그냥 여자라도 만나서 놀아야겠다.....' 아침에 전화가 왔다. 금요일에 만나기로 한 선생님이 오늘 만나자 하신다. 목요일 저녁에 일이 있어서 못 나갈 상황이었는데 전날 밤에 그리 빌었더니 어쩐 일인지 바로 놀자고 연락이 온다. 아싸~! 그래서 아침에 나섰다가 11시간 만에 집에 들어왔다. 이렇게 쇼핑이 힘들 줄이야. 오가는데 3시간, 앉아서 밥 먹고,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또 쇼핑하고 그랬더니 정말 하루가 금방 간다. 게다가 환갑, 진갑 다 넘으신 분이 무슨 기운이 그리도 좋으신지 신나게 이 .. 2018. 8. 2.
꿈을 부는 아이 2004년 9월 9일 23:33 우리 집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면 도로를 끼고 놀이터가 있고 놀이터 앞은 바닷가. 집 앞엔 저렇게 밭이 있다. 낡고 불편한 집에서 이사를 나가지 못하는 많은 이유 중에 내 형편에 더 좋은 집 찾아 이사하기 어렵다는 것은 제외하고 이런 환경이 드물다는 것이다. 언제든 보고 싶으면 바다를 볼 수 있다. 옥상에 올라가도 볼 수 있고, 골목만 빠져나가면 바다가 보인다. 어릴 때 내가 자라던 집은 마당이 넓어서 갖가지 나무가 있었다. 겨울엔 마당에 있는 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아놓고 즐거워했었고 봄이며 여름이면 파랗게 온통 벽을 덮고 자라던 담쟁이며, 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피던 딸기 냄새나는 덩굴장미의 빨간 미소로 한없이 행복했던 담장 옆 대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였다. 내.. 2018. 7. 26.
뉴스1 * 오늘부터 무급 휴가인 방학이다. 더운데 어디 갈 데도 없고, 고3 딸 시중도 들어야 하니 엄마 노릇이나 잘하면서 집에 콕 틀어박혀 있을 예정이다. 오늘은 정말 꿈이었으면 싶은 뉴스가 떴다. 그 뉴스가 온라인에 도배되기 전에 가장 신경이 곤두서던 뉴스는 박근혜 탄핵 전에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포함된 기무사 계엄령 관련 문건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뉴스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실감 나지 않는 비보가 뉴스 전체를 도배하듯 떴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 의아한 생각도 든다. 어쨌든 안타까운 죽음이라 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국민 대다수의 바람대로 실정 한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대통령이 자리에 앉았지만, 전체적으로 정권이 바뀌었다는 생각보단 .. 2018. 7. 23.
딸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 금요일 저녁, 통영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정말 오랜만에 딸과 함께 집 떠나 짧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고3인 딸이 요즘 들어 자주 머리가 아프고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하여 자꾸 신경이 쓰인다. 뭘 도와줘야 할지 몰라서 생각하다 정신집중에 도움이 될만한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용인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용인으로 이동하여 지난주에 이미 한 번 다녀간 적 있는 사찰에 갔다. 미얀마에서 '아나파나 사티'의 대가로 인정받는 스님이 오셔서 그 절에 있는 국제선원에서 직접 '아나파나 사티'지도를 하신다는 자리다. 금요일부터 2박 3일에 걸쳐 진행되는데 우리는 토요일 아침부터 참여했다. (아나파나= 숨쉬기, 호흡법/ 사티 =집중) 한쪽 발에 뼈 한마디가 더 자라는 부주상골 때문에 다리와 발이 .. 2018. 7. 22.
7월 20일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다. 취향이란 게 있다. 커피를 마실 때 블랙으로만 마시는 사람도 있고, 부드러운 크림 넣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입맛대로 자기 취향대로 선택한다. 그건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이성에 대해 취향을 드러내면 까탈스럽다는 핀잔 섞인 눈초리가 덤으로 날아온다. 까탈스러워서 쉽게 아무나 만나지 못하고 인연을 맺지 못하더라도 그건 내 선택이다. 아는 사람 중에 남성을 볼 때 얼굴형까지 세심한 기준을 가진 사람도 있다. 어떤 친구는 남자는 하관이 두툼하니 턱이 좀 있어야 남자 같아 보인다 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도 이왕에 깎아놓은 것 같은 뾰족 턱보다는 그런 쪽이 낫다는 정도는 생각하게 되었다. 20대에는 나도 그런 유치한 기준이 몇 가지 있었다. '치열이 가지런하고 머.. 2018. 7. 20.
미안하다.. 얘들아.... 이런 종류의 뉴스를 접하고 나면 며칠을 앓게 된다. 아동학대, 어린이 사망사고 등..... 어제부터 계속 어린이집 아이들 사망사고 뉴스를 보고 듣고 하다보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고 다음 세상을 이어갈 가장 기반이 되는 계층이 아이들이다. 많은 사회적 약.. 2018. 7. 19.
태국 소년들의 무사생환 뉴스를 보고 태국 유소년 축구팀과 코치가 동굴에서 실종된 지 17일 만에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눈물이 났다. 특별히 범인류애적인 사랑이 발동되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기 보단, 그에 앞서 우리의 가슴속에 크나큰 상처로 남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린 이들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도 그랬어야 했는데..... 잠들기 전에 딸이랑 그 사건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젊은 축구 코치의 남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어둡고 먹을 것 없는 동굴 속에 갇혀 있었다면 공포에 짓눌려서 어른들조차도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쓰러지거나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모두 무사하게 돌아온 것에 여러가지 요소가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그 코치가 어린 시절 가.. 2018. 7. 13.
비오는 날 수국 핀 연화도를 걷다 잠시 비 오다 그칠 줄 알고 나섰다가 종일 비를 맞으며 돌아다녔다. 비옷도 입고 우산도 쓰고 다녔건만 팔에 화상으로 감은 붕대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 상처가 덧났다. 비록 혼자였지만 주말에 사람들 붐비지 않을 때 꿈결처럼 아름답게 수국 핀 길을 걷고 와서 행복하다. 객실이 3가지 타입으로 구분되어 있던 욕지행 카페리호, 좌석형, 큰 방, 작은 방 욕지도 가기 전에 내려주는 연화도에 처음 가보기로 했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이번보다 훨씬 쉽게 나설 맘이 생길 것이다. 예쁜 아가씨들이 너도 나도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부른다. 연화도에서 통영 삼덕항으로 가는 배, 욕지도나 연화도 여객선은 통영 여객선터미널, 통영 삼덕 선착장 두 곳에서 탈 수 있다. 통영항에서 연화도와 욕지로를 운항하는 욕지 아일랜드호 화장실과.. 2018. 7. 6.
익숙한 것과 이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말 오래 들고 다니던 가방과 이별할 때가 되었다. 한번 물건을 사면 닳아서 버릴 때까지 즐겨 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꼭 그렇게 쓰고, 손이 영 안 가는 물건도 많다. 싼 것 여러 개 사서 쓰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뭐든 하나 딱 마음에 드는 걸 사서 그걸 즐겨 쓰는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다. 내게 있어선 사람도 그렇다. 성별이 여자든 남자든 주변에 여러 사람 두고 만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좋은 사람이 여럿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한 사람이라도 내 마음에 들고 똑바로 된 사람을 친구로 두고 오래 만난다. 낡은 가방을 이젠 제발 좀 버리고 새 것 좀 사서 쓰라던 딸이 어제 내가 새 핸드백을 사온 걸 보고 잘 샀다고 칭찬까지 해줬다. 그런데 이 낡은 가방을 버리려고 했더니 여태 손때.. 2018. 7. 5.
7월 4일 누군가 만나러 갈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낯설고 설레는 기분보단 익숙하고 편안한 연인이 있다면 연락 없이 불쑥 오늘 같은 날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찾아가 보면 어떨까...... 혼자 진주로 향하는 길에 이런저런 망상에 빠져본다. 스무 살에 시작된 인연, 어언 30년 이어진 인연이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국수 한 그릇 먹으러 일부러 찾아가는 집이다. 유부초밥, 유부 김밥도 함께 주문해서 국수랑 먹으면 맛있는데 오늘은 혼자여서 국수만 한 그릇 주문했다. 30년 걸음 하는 동안 이 집 국수 맛에 한 번도 실망해본 적이 없다. 깔끔하고 면은 쫄깃하게 삶아내 주신다. 양도 푸짐하다. 호박, 부추, 숙주, 조갯살이 함께 조화로운 맛을 낸다. 어릴 땐 국수를 즐기지 않다가 중학생이 되고서는 국수 맛에 눈.. 2018. 7. 5.
김복득 할머니 추도식 오후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故김복득 할머니 시민사회장 추도식에 딸과 함께 다녀왔다. 향 한 자루 피우고, 국화 한 송이 올리고 가시는 길 편히 가시라고 인사드렸다. 추도식에 참석한 통영의 소녀들과 함께 할머니의 삶을 기리는 조사에 눈물을 닦았다. 101세로 어제 세상을 떠나신 김복득 할머니의 소원은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 언제쯤 그 소원이 이뤄질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가려니 걸음도 무거워서 집 근처 카페에 앉아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이전 정부가 벌인 일본과의 졸속 합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딴 식으로 하지 않고 나라에서 좀 더 신경 쓰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더 오래 사실 수도 있었을 텐데..... 추도식장에서 계속 옆에서 눈물을 훔치던 딸의.. 2018. 7. 2.
그 시절 한 소녀의 부음을 듣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께서 오늘 101세의 연세로 별세하셨다. 나도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일본군에 끌려갔을 수도 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잔혹한 침탈의 역사적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일본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 2018. 7. 1.
화상으로 인한 통증 팔을 다친 후 생활에 제약이 많이 생겼다. 상처 부위에 고름이 차서 매일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한다. 붕대 감은 곳에 물이 묻으면 안 된다 하여 땀을 흘리는 것도 신경 쓰인다. 세수하다가 붕대에 물이 젖어서 살이 간지럽고 아프다. 2도 화상은 처음이다. 벗겨진 피부가 징그럽게 .. 2018.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