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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177

10월 30일 그 흔한 질문 하나 없이 완벽하게 시험은 잘 치러졌다. 12시 반 조퇴 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 선생님의 아주 빠른 차를 타고 진주에서 꽤 유명한 유부 김밥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내 가방과 함께 딸내미 원룸 앞까지 태워줘서 감사하고 기분 좋았다. 통영에서 퇴근한 뒤 곧장 터미널로 나를 마중 나올 친구와 오랜만에 만날 약속이 미리 잡혀있어서 딸내미 원룸에서 한두 시간 쉬었다 가면 될 것 같아서 잠시 누웠다. 딸은 바빠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도 못 보고 그냥 가겠다. 갖다주려던 옷가지를 꺼내놓고 작은 침대에 누워서 뉴스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약속 시각보다 훨씬 먼저 도착하거나, 조금 늦게 도착하는 차 둘 중 먼저 도착하는 차를 타려고 일찍 나섰다. 표를 끊고 금세 도착할 차를 .. 2020. 10. 30.
10월 29일 내일까지 대부분의 일은 점심 전에 끝난다. 오늘도 점심 먹고 나니 대부분 조퇴하셨다. 나 혼자 빈 연구실에서 빈둥거리기도 지겹고, 밖에 나가봐야 온통 내가 싫어하는 냄새가 역하게 나니 짜증 나고, 별 수 없이 뭔가 일을 시작해볼까 마음먹고 새로 커피 한 잔 내리고, 음악도 틀어놓고 잠시 앉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온다. 히말라야에 가자는 남 선생님 전화다. 얼마 전에 거기 한번 가보자는 말은 나왔지만, 시간이 마땅하지 않아서 갈 수가 없었는데 심심해서 죽기 일보 직전인 나를 구해주신다. "히말라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좋아요~좋아요~좋아요~~~!!!"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동네 함양군 유림면 천왕봉로에 있는 찻집에 갔다. 정말 귀여운 똥강아지 두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다가와서 내 냄새.. 2020. 10. 29.
챙겨 먹는 것을 자꾸 잊는다. 찬바람 나기 시작하니 자주 목이 간지럽다. 내가 산 것보다 지인들께 받은 것이 훨씬 많다. 골고루 잘 챙겨 먹어야겠다. 잠시 괜찮았다고 계속 괜찮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끗 차이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할 것. 2020. 10. 29.
10월 28일 작은 모임이 있어서 점심을 밖에서 먹었다.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에 본 하늘 오후에 일찍 일과가 끝났다. 화요일에는 오 선생님 퇴근하시는 차를 타고 진주에 다녀왔고, 어제는 남 선생님께서 진주 가실 일이 있다고 하셔서 또 따라나섰다. 어차피 퇴근하고 걸으러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일찍 기숙사에 들어가 봐야 좋은 것 없다. 전날에 저녁도 함께 먹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섭섭해서 딸이 좋아하는 초밥 사준다고 학교 앞에 나오라고 연락했더니 여전히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하겠단다. 혼자 진주성이나 남강변이라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조금 걷다 보니 밥만 먹고 들어가겠다고 연락이 온다. 초밥 먹자고 불렀는데 내가 점심 회식에 초밥을 먹었다고 했더니 딸이 메뉴를 바꿔준다. 초밥 먹고 싶어서 간신히 마음을 바꾼 딸에게 감지.. 2020. 10. 29.
Warning 월요일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변화를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다. 알지만 모두 제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월요일에는 이어 플러그를 꽂고 수업 시작부터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 큰소리로 뭔가 이야기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중에 내가 평소에 하는 행동보다 훨씬 감정적이고 과한 반응을 한다. 그전에 시간을 두고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져서 그때부터 이상했다. 평소엔 생각해야 할 것도 생각하지 않는데,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도 생각한다. 쓸데없는 감정이 넘쳐서 입 다물고, 눈 감고, 기록하지 말고 잠이나 자야 한다. 사진도 다음에 옮기고 며칠 동안 침묵할 것! 2020. 10. 28.
10월 27일 가볍게 학교 주변 한 바퀴 돌자고 하셔서 나갔다가 한낮의 볕은 뜨겁고 그늘진 곳이 없어서 꽃봉산으로 향했다. 정말 걷고 싶지 않은 계단이 끝없이 위로 이어져있다. 평지는 걸어도 경사진 길을 걷는 것은 잠시 산책하는 정도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조금 걷다 보니 얇은 블라우스만 입었는데도 땀이 난다. 내가 먼저 항복했다. 꽃봉산 정자는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고 내려왔다. 해결할 수 없는, 해결하기 힘든,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두고 조심스럽게 오가는 대화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일과 마치고 예전처럼 걷기엔 주변에 발효 덜 된 인분 퇴비 구린내가 지독해서 전날도 그대로 기숙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작정 옆자리 선생님 퇴근하는 차에 올라탔다. 익숙한 곳에 내려서 방황하다가 단골 국숫집에 갔다. 딸은 이.. 2020. 10. 28.
10월 26일 어제 저녁,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경기도 어딘가를 지나면서 아파트가 즐비한 스카이라인 사이로 지는 노을을 봤는데 다시 돌아온 현실은 저녁 8시인데 불 꺼진 작은 읍내에 발을 딛자마자 곳곳에 인분 거름을 뿌린 밭에서 바람과 함께 마스크를 뚫고 엄습하는 독한 냄새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곳에서 한철 사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평화로운 산책길은 밭에 뿌린 인분 거름 냄새 때문에 나설 수가 없고, 오후 6시면 일제히 어두워지는 춥고 바람 부는 거리에 혼자 나서는 것이 이젠 망설여진다. 오늘은 점심 먹고 동네 한 바퀴 하면서도 그 역한 냄새에 점심 먹은 것을 토하고 싶을 정도였다. 도대체 어디에 민원을 넣어야 이 동네 구린내나는 바람을 피해 창문 열어 환기.. 2020. 10. 26.
잔잔한 일상 어제 아침, 남 선생님께서 출근하시면서 들꽃을 한 바구니 담아오셨다. "가을 갬성 죽이지~~~요." 내가 천에 그리던 것이 구절초라고 생각했는데 들국화도 아닌 것이 구절초도 아닌 것이 둘을 섞어놓은 형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얀 구절초가 참 예쁘다. 전 학년이 등교하면서 점심시간이 길어졌다. 점심 먹고 가볍게 주변 한 바퀴 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교시 혹은 5교시 수업 없을 때만. 학교 옆 면학정에 처음 올라가서 앉아봤다. 사방에서 오는 바람이 선선하니 좋아서 한숨 자고 싶었다. 호방한 남 선생님은 개량 한복에 버선발로 다리 뻗고 누우셨고 나는 얼굴에 시원하게 불어 드는 바람을 잠시 즐겼다. 낮에 어찌나 더운지 아침에 입고 왔던 트렌치코트며 카디건까지 다 벗어도 얇은 블라우스에 땀이 찬다. 학교.. 2020. 10. 21.
10월 20일 산책길 풍경 일교차가 심한데 어제는 유난히 낮에 더워서 입고 있던 블라우스가 땀에 젖을 정도였다. 퇴근한 뒤 읍내 세탁소 들렀다가 그대로 기숙사에 들어가서 잘까 걸을까 망설이는데 마침 부사감님이 나를 발견하시고는 매일 걸으러 가는 길이 어디냐고 같이 걷자고 하신다. 늦게 나가서 어두워지는데 멀리 걷기도 곤란하고, 빨리 걸어야 운동이 되니까 빨리 걷자 하셔서 눈치껏 적당한 속도로 걷는데도 따라오지 못하고 종종 돌아보면 달음박질하듯 나를 향해 뛰어오시기를 반복하셨다. 산길을 그리 잘 걸으신다는데 다음에 함께 가보기로 한 꽃봉산 정자 가는 길에는 내가 그렇게 뒤처져서 걷게 되겠지. 지곡사 앞 내리 저수지까지는 가지 못하고 지성마을 앞에 등을 밝혀놓은 저수지까지 걷고 돌아왔다. 저녁에 업무 시작하시는 분을 지치게 할 수는 .. 2020. 10. 21.
10월 19일 산책길 풍경 산청읍내에 시외버스 터미널을 기점으로 반대편 주택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길도 익힐 겸 향교가 있다는 방향으로 걸었다. 이 집은 벽에 나무를 덧대어 놓아서 반대편에서 보면 더 눈에 띄는 집이었는데 그쪽엔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앉아계셔서 반대쪽에서 찍었다. 산청 향교 앞에 있는 은행나무 산청 향교 2020. 10. 21.
시절 인연이 다한 곳에 다녀왔다. 내 나이 서른이었을 때,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고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던 그분 이야기를 쓰고 나서 두 시간 뒤에 정말 예정에도 없이 그곳에 인연이 있는 어떤 분과 거기에 함께 다녀왔다. 생각한 것이 너무 빨리 이뤄져서 놀라울 정도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혼자라면 섬이라도 갈까 하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망설이던 참에 잠시 바람 쐬러 나가서는 문득 그곳에 한번 가보자는 이야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곳에 가보니 그분이 그곳에 다시 오셨다가 떠나신 지 몇 해는 지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서 그곳의 기운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여전히 평화롭지만, 그 시절과 다른 그곳의 기운이 그간 그곳에 통 발길이 가지 않던 이유를 대변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떤.. 2020. 10. 17.
짧은 가을을 즐겨야지! 통영은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다. 남도에 속하지만 해가 지면 어깨가 살짝 움츠러드는 산청과는 비교가 될 정도로 따뜻하다. 어제저녁에도 반소매 차림으로 나다녀도 될 만큼 통영은 따뜻했다. 가을이 사라지고 금세 겨울이 올 것 같았는데 이곳은 여전히 가을 가을 하다. 주말 내내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까 봐 오후에 해야 할 일을 안고 왔는데 밤에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살짝 꾀가 난다. 이런 좋은 날은 어딘가 가서 걸어야 할 것 같다. 조금만 일찍 생각했더라면 연대도, 만지도 가는 배라도 탔을 텐데...... 갈까 말까...... 내일 아침에 갈까...... 토요일은 늦잠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가고 싶다. 주문한 커피도 한 잔 마셨고....... 2020. 10. 17.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 20대 후반, 나만의 깊은 동굴에서 지낼 때 가끔 뭔가 막히면 그 질문을 밤새 머금고 있다가 날이 밝은 대로 시외버스를 타고 미륵산 그곳에 찾아갔다. 그때 내가 뭔가를 여쭤볼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셔서 그분의 말씀을 많이 따랐다. 내 질문에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답을 해주셨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 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내 의식체계의 상당 부분을 재편성하였을 때,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상당히 단순하고 수준이 낮았다. 복잡한 것을 읽지 않고 단순하게 보니까 계산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많은 것을 대하게 됐다. 그때 그분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 였다. 내 주변의 상황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누구라도 손을 내밀면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고 .. 2020. 10. 17.
따로 또 같이 서로 해 먹은 음식 사진을 카톡으로 공유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주말을 보낸다. 잠들기 전에 통화하면서 "있잖아..... 엄마가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에 나오는 안무에 확 꽂혀서 따라 해보려고 하니까 팔다리가 따로 놀아서 따라 하질 못하겠어. 네가 유튜브 보고 배워서 나 좀 가르쳐줘 봐." 딸은 노래는 들어봤는데 안무는 본 적이 없단다. 링크 하나 보내주고 잡담하다가 갑자기 피곤해져서 전화를 끊었다. 뭘 했다고 이렇게나 피곤할까. 음식 해 먹고 사진 찍는 것 보고 자라서 딸도 자취방에서 해 먹은 음식 사진을 찍어서 보여준다. 예쁜 그릇 보내준 보람이 있네. ㅎㅎㅎ 지난주에 달걀말이 하고 애호박전 부쳐서 갖다 준 것 맛있게 먹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시장 보면서 달걀을 샀다. 애호박도 살 걸 그랬나? 어차.. 2020. 10. 17.
10월 16일 남들은 불타는 금요일이라지만 나에겐 월급이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 그래도 오늘은 집에 가서 뭔가 맛있는 것 먹어야지! 퇴근 40분 전부터 슬슬 가방을 싸고, 시험 문제 내느라 정신없던 컴퓨터를 끄고 얼른 퇴근하고 싶어서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봐야 오늘은 딸도 오지 않고 혼자 있을 텐데....... 어쨌든 얼른 나가고 싶었다. 컴퓨터 꺼놓고 가방 싸놓고 나니 심심해서 책 읽다가 오늘의 셀카도 찍고. 찍어 놓고 보니 신기한 내 옆 모습. 옛날에 턱 깎아 달라, 코 세워 달라고 엄마한테 괜히 떼썼을 때 왜 내 등짝을 후려치셨는지 알겠다. 오늘도 여전히 오 선생님은 힘껏 액셀을 밟으셨다. 국도에서 속도 120은 기본이다. 카트라이더 선수급으로 산청-진주간 국도를 지나 진주 시내를 통과해서 진주 시외.. 2020. 10. 16.
점심 먹고 잠시..... 햇살이 눈부신 시각에 잠시 나섰더니 이토록 아름답다. 해 질 녘에 같은 길에서 보게 되는 풍경과 사뭇 다르다. 2020. 10. 15.
오늘 저녁에..... 버드나무집 어탕 오늘은 저녁에 혼자 걷는 것 포기하고, 야근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저녁 먹고 주말에 하려던 일 몰아서 하기로 했다. 1인 8,000원. 같은 가격을 받는 내리 식당 된장찌개보다 반찬이 좋다. 좋아하는 시래기 듬뿍 들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사람 속에 있지만 어울리지 않으니 외로운 거다. 다들 자기 일로 바쁘고 퇴근하면 혼자 걷고 혼자 지내니까 마음이 계속 울적했던가 보다. 독서 시간에 또 책 읽다 울었다. 요즘 거의 매일 한 번씩은 운다. 책을 읽지 말아야 하나? ㅋ 저녁에 딸이 학교에서 교수님과 상담하고 나오는 길이라며 전화하며 살짝 울먹였다. 나를 아는 교수님과 상담하면서 근황을 묻고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던 모양이다. 일이 풀릴 때가 되면 풀릴 것인데 어떻게 풀릴지 .. 2020. 10. 14.
10월 14일 산책길에..... 수요일 그림 그리기 대신 해지기 전에 잠시 햇볕 쬐러 나서는 분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작고 노란 국화를 따서 꽃차도 만들고 염색에도 쓴다. 학교 뒤에 산청군에서 운영하는 약용식물 단지에 염색하는 곳도 있다. 은은한 은회색 물을 들일 때 쓴다는 신나무를 쓰기 좋게 패고 있다. 염료로 염색하기 전에 염색하기 좋은 상태로 준비한 갖가지 천과 천연 염색한 상품 구경도 하고 목화로 만든 리스 학교 옆 면학정을 지나서 늘 지나가면서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조산공원 지나서 읍내에 새로 생긴 음식점에 셰프가 키도 크고 잘생겼다며 가보자는 분 따라서 엊그제 지나가면서 나도 스쳐간 음식점에 갔더니 쉬는 시간이다. 한 번 꼭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혼자 카페 앉아 있기 싫어서 지나치던 '솔직한 곰'에서 진한 커피 한 잔. 커.. 2020.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