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섬 <2003~2009>/<2005>75 9월 14일 조카는 자폐증이다. 옹알이 안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외에도 신체적 결함이 있어 참 아프게 키운 아이였다. 여동생보단 어머니와 내 등에 더 많이 업혀서 자란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내 딸 사지 성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에 대해 더더욱 감사하게 된다. 그 아이 데리고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는데..... 조카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여동생의 책임인 양 시댁에서 못살게 굴어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동생은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아 개가해서 살고 있지만 나는 빈손으로 아이만 데리고 나와서 사는 게 매양 거기서 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딸과 나는 서로가 없으면 외톨이다. 이혼한 것이 무슨 대역죄나 되는지 우리 가족들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래서 딸에게도 일가친척은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추석이 다.. 2005. 9. 14. 추억이 담긴 사진 1993년 4월 10일 하숙집 사람들과 찍은 사진이다. 제일 왼쪽 한 명과 가운데 새침데기같이 서 있는 나만 빼고는 모조리 93학번 새내기들이었다. 난 그 하숙집 5년 차여서 예비역 남학생을 제치고 하숙집 방장인가 뭔가가 되었다. (하숙생이 스무 명 가까이 되니 대표가 필요했다.) 일요일에 뭔 청승인지 하숙집 후배들 이끌고 동네 공원에서 폼 잡고 촌스럽게 기념촬영까지 했다. 그 당시 하숙생이 17명이었는데 그날 함께 나온 사람은 열 명쯤 되었나 보다. "남는 게 사진밖에 없다. 가자~~!!" 마침 그날 페스티벌 참석차 정장하는 후배들이 많아서 그랬나...? 그 당시 유행하던 기성복은 어깨에 뽕이 과했다. 그때는 당연한 듯 입었지만, 지금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다. 지금도 저 정장이 모셔져 있지만 치마가 몸.. 2005. 9. 13. When the love falls * 2012년 10월 24일 옮기면서 글을 읽어보니 2005년에 어느 사이트에서 잊지 못하던 사람과 꼭 닮은 사람을 발견하고는 동일인인 줄 알고 속을 앓을 때 썼다. 그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이름과 나이와 생김새까지 비슷했던 그 사람을 나중에 만났다. 그 사람은 내가 찾던,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다시 확인하고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막연한 기다림을 지우는 계기가 되었다. 바람이 분다. 곧 비도 한줄기 하겠다. 빗소리와 섞인 피아노 연주를 듣다 머릿속이 정전됐다. 현재 시점의 모든 생각이 일시에 전원이 꺼지고 한참을 꼭꼭 닫아두었던 묵은 기억들이 그 틈을 타서 부활한다. 부슬부슬 비 오는 날 잠시 함께 걸었던 길마저도 잊지 못하고 있었던 내가 .. 2005. 9. 13. 조기 치매 증상 이건 분명히 치매다. 그렇지 않고서야.....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피곤해서 자리를 물리려던 즈음 밖에서 돌 던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누가 저러나 싶어 부엌으로 나가본 순간.... 으악~! 밤 찌던 냄비가 타고 있었다. 돌 던지는 소리는 밤이 너무 익어서 폭발하는 소리였다. 찜기를 이용해서 밤이 타지는 않았지만, 찜기가 타버렸다. 부엌엔 연기가 자욱한데 넓지도 않은 이 집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도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었던 건지.... 엊그제 카키 님 블로그에서 달걀 삶다가 냄비 태운 사진을 보고 남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런 정신으로 살려면 죽어야지..... 도대체 이게 몇 번째야!!! 무서워서 밤을 어찌 먹나..... 2005. 9. 10. 만남 2 추석 지나고 그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한 녀석은 너무 바빠서 전화나 문자도 없고, 취업시험 공부 중인 한 녀석은 그래도 가끔 전화해준다. 그 전화가 언제나 반갑고 고맙다. 오래전이고 그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은 아니어도 참 좋았던 때 좋은 인연으로 알게 되어서인지 그때의 기억으로 고정되어 있어서인지 그들에 대한 생각은 늘 기분이 좋다. 다만, 그사이 참 맥없고 부실하게 변한 나를 드러내어 보여줘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 여태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피해 다닌 것처럼 그들에게서도 그리움의 테두리 내에 있으면서도 피해 다닌 셈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사람들을 피해 다닐 수는 없으니 그리웠던 사람들은 어떻든 만나고 싶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냥 한 번 만나고 옛날이야기 한 번 나.. 2005. 9. 9. 태풍이 지난 뒤 맑고 평온한 하늘과 바다 2005년 9월 7일 오후 어찌 이리도 하늘빛이 고울까...... 2005년 9월 3일 촬영 지난 토요일 여우비 내리던 오후, 마지막 더위를 바다에서 즐기는 아이들 어릴 적 건너편 바닷가에 살 때도 이렇게 동네 아이들 노는 바다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저 아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2005. 9. 7. 수지뜸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환기를 시키고 싶어졌고 환기를 시키다 보니 며칠째 심한 재채기와 콧물에 영락없이 중환자같이 변한 내 꼬락서니가 안돼서 냄새랑 연기가 좀 심해서 한동안 쓰지 않던 쑥뜸을 꺼내어 뜸을 떴다. 면역력 강화에 좋다길래 샀다가 초봄엔 저혈압인 데다 워낙 기력이 약한 상태에서 했더니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가 심하게 나서 몇 번 쓰다가 장롱 안에 모셔두고 잊고 있었다. 봄부터 약을 몇 재 쓴 덕분인지 이번엔 구토가 나거나 어지럽지는 않다. 꾸준히 하면 이 상태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지..... 왼손하고 나서 오른손 하려니 왼손으로 불붙이기 어중간해서 왼손만 하고 치웠다. 이럴 때도 옆에서 누가 불이라도 붙여주면 참 좋을 텐데 오늘은 아무래도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많이 우울한 모양이다. 자꾸.. 2005. 9. 6. 울타리 산 저 너머엔 햇살이 드리웠던 모양인지 해가 넘어가기 전 하늘빛이 온통 보랏빛으로 변했다. 창 너머로 붉은 기운이 드리는 것을 보고 우산 쓰고 나가서 조금 전에 찍은 사진.(2005년 9월 6일 오후 7시 현재)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난다. 힘들고 서러운 생각 다 잊어버리고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자꾸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에 몸살을 앓는 자신을 나무라게 된다. ********************************************************************** 비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집안에 있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웅웅거리며 창을 때리는 소리만 들릴뿐이다. 나는 젖지 않는다. 태풍 때문.. 2005. 9. 6. 태풍 전야 색의 향연 9월 5일 6시 50분- 7시 사이 통영 앞바다와 하늘 태풍 소식을 듣고 바다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어진다. 2005. 9. 5. 나의 J에게 J에게라는 노래가 나오기 얼마 전쯤, 더러 버스 타고도 다니고 더러는 빠른 걸음으로 30분 이상 걸리는 길을 걸어서 중학교에 다녔다. 등굣길이나 하굣길에 한 번쯤은 꼭 마주치던 하얗고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을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학년 때 짝사랑하던 과학 선생님께서 전근 가신 후로 어딘가 집착할 곳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운동장 너머 바로 앞에 남자 중학교가 있었다. 하얀 얼굴에 오뚝한 콧날, 긴 다리 깊은 눈매..... 그 남학생의 성품이 어떤지 눈곱만큼도 모르는데도 매일같이 버스 안에서나 길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자연히 나도 모르게 혼자 정이 들었다. 그 빛나는 이목구비를 가진 남학생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땐 눈에 보이.. 2005. 9. 2. 라면 끓여주는 여자 어제 오후에 오랜만에 친구 집에 갔었다. 쉬는 날 없이 계속 일을 하던 친구라 한번 만나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는데 최근에 좀 더 시간이 편한 곳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나기 시작하면서 나도 부쩍 외로움을 심하게 타기 시작했다. 자꾸만 따뜻한 이불속, 따뜻한 음식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워진다. 어젠 유난히 더워 가자마자 아이스티 한 잔 마시고 한참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하는 동안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던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눈이 갔다. 갑자기 그 냄비에 끓인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친구가 손수 해주는 밥을 먹고 싶었다. 그 더운 날 일 마치고 와서 이것저것 신경 쓰고 음식 만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주 간단한 메뉴로 주문했다. 난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할 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해주.. 2005. 9. 2. 그리움이 익는 계절 보고 싶고 궁금했던 또 한 사람을 찾았다. 이젠 50대에 접어드셨을 산야초 아줌마. 싸이를 통해 딸, 아들 이름 다 동원해서 찾아봤지만, 사진이 없어 확인을 못 하고 헤매다 특이했던 그 아들딸 이름을 토대로 웹에서 검색한 결과와 여러 가지를 대조한 끝에 어디에 사는지를 알아냈다. 전화번호까지.... 이렇게도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전에도 이 데이터를 찾았어도 확신을 하지 못했었는데 그 주소와 관련된 딸 이름이 든 웹 페이지가 있어서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화를 먼저 해볼까 불쑥 찾아가 볼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고성에 살 때 더러 진주에 살고 계시던 그 아주머니댁에 가끔 놀러 가서 온종일 이야기하고 놀다가 자고 오기도 했었다. 그 아주머니보다 한참 나이가 많으셨던.. 2005. 9. 2. 만남 보고 싶던 얼굴과 드디어 목소리 상견례를 했다. 11년 전 열다섯 살 까까머리들이 어느새 스물여섯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냥 친구 하자고 그랬더니 몸 둘 바를 모르는데 재밌어 죽는 줄 알았다. 통화하는 내내 옛날이야기에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 정말 너무 궁금하던 두 녀석과 통화를 하고 나니 밤이 깊어졌다. 빠르면 이번 주말, 좀 미뤄지면 추석 전후로 그 녀석들과 뜨거운 상봉이 있을 예정이다. 아........ 정말 너무 기대되는 만남이다. 11년 전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의 11년 전 모습을 조명해주기로 했다. 만나고 싶어서 서울에서 조만간에 날 받아 내려온다는 녀석은 얼마나 이쁜지 그때도 참 곱게 생겼었는데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2005. 9. 1. 8월의 마지막 만찬 두 달 전쯤 갓난아기를 낳은 한민이 엄마가 바닷가로 놀러 나왔다고 전화를 해서 오후 내내 쑥쑥한 꼴로 컴 앞에 붙어 있다가 씻고 휘적휘적 나갔더니 일전에 새사람이라고 찍어 올린 아기가 엄마 등에 붙어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한민이네는 3년 전쯤 동네 길 어귀에서 만나 알게 되었다. 부산에서 이사온 새댁이었는데 지영이 또래만한 남자아이 손을 잡고 길을 가다 내게 말을 걸어와서 오며 가며 만나면 인사를 하고 지냈다. 나와 성격이 잘 맞거나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 외엔 인사를 트고 지내도 거리를 두고 그 이상은 가까와지지 않으려는 습성을 가진 내게 그녀는 나름대로 가까워지려고 애를 썼지만 좀 떨어진 동네로 이사하면서 자연히 오갈 일이 없어져버렸다. 그나마 그녀에 대해 언젠가 밥 한 끼는 사야 할 것이라고 .. 2005. 9. 1. 추억 속에 남아있는..... 가을 소풍이었던가... 청량산 문수암 아래 소풍 가서 중2 까까머리들이랑 친구처럼 혹은 애인처럼 보일 포즈로 사진을 함께 찍었다. 어깨에 손 올리고 한 번 찍어보는 게 녀석들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처럼 생각되었는지 용기를 낸 녀석들이 앞다투어 그 포즈로 찍기를 바랐다. 그 사진이 어딨는지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어디서 사들고 와서 마셨는지 녀석들 맥주 한 모금씩은 마신 것 같았다. 얼굴이 적당히 붉어진 것이 낌새가 그랬다. 나는 스물 다섯 그 녀석들은 열다섯... 그때도 참 좋은 때였다. 내 나이 서른 여섯이 되는 동안 그 녀석들은 항상 기억 속에서 열다섯 살이었다. 그런데 그들도 스물여섯 살이 되어 있었다. 어제 싸이홈피에서 그들의 청춘을 훔쳐봤다. 정말 톡톡 터지는 석류알에서 싸아하게 풍기는 새콤하.. 2005. 9. 1. 옛 기억을 더듬어..... 내친김에 싸이에서 옛날 제자들 중 우리 집에도 놀러 왔던 녀석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검색을 하다 지쳐서 포기하고 아이러브스쿨에 들어가서 검색한 끝에 스물다섯에 잠시 근무했던 학교 학생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검색된 아이디로 문자 보내기를 클릭해서 "아무개야~ 뭐하니~" 이렇게 적어 보냈더니 전화번호가 입력된 것은 아니라도 보관된 데이터대로 송신이 되었는지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 얼결에 전화해서 아는 여자중에 누군지 한참 생각하다 누구냐고 묻길래 몇 가지 힌트를 줬더니 금세 기억해냈다. "우리 밥 잘 사줬던 선생님.. 어..근데 선생님 결혼하셨어요?" 거기서 웃음이 나서 혼났다. 사실 우리집에 놀러 와서 팔베개해달라던 녀석을 찾아서 내 앨범에서 꺼내간 사진을 받아야 하는데 그 녀석과는 연락이 안 되고 다른 .. 2005. 8. 31. 오늘의 산책코스 해저터널 내부 상수도와 전화나 전기케이블 보호를 위해 둑을 쌓은 자리에 오래전엔 시멘트 둑이 없었다. 여름에 더울 땐 돗자리 하나 들고 내려와 둑이 있는 자리쯤에 자리 잡고 앉거나 누워서 책 읽는 것을 즐겼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은 거의 한 여름 무더위를 그렇게 넘겼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내가 어릴때 살던 동네. 지금은 저 바다 건너, 다리 너머에 산다. 살던 집은 해안도로 확장공사로 13년 전쯤 허물어졌다. 그때는 대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 도로변 집이어서 매일 눈만 뜨면 호수 같은 바다를 보고 자랐다. 충무 운하교와 저 너머 초록불 켜진 통영 대교. 운하교 아래를 파서 해저터널을 만들었다. 왜란 당시 지금 오색불빛이 영롱한 바다를 지나 왜군들의 시신들이 .. 2005. 8. 31. '천원의 행복' 엠블의 유명인사 카키 님이 만화 연재를 하신다는 월간지 10월호에 내 글 한 편이 실리게 됐다. 어제 이웃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한참 수다 중에 전화를 받았다. 주소를 물어봐서 가르쳐주고 끊었다. 그런데 나현이 엄마가 말하기를 "어.. 원고료 같은 건 안 준대요?" "그런 말 없더라고요. 아마 10월호 보내주는 거로 때우나 봐요." "그래도 섭섭하겠다. 한 권은 아닐 테니 두 권 오면 나도 한 권 줘요." 인터넷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그중에 한 편 정도 발췌되어 실리는 경우는 허다할 것이다. 10년 전에도 출판사 세 곳쯤에서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았던 적이 있긴 하다. 지금 쓰는 글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글들이 많았고, 거절하다 세 번째엔 전속계약까지 했는데 그 출판사가 망했다. 그때도 목적.. 2005. 8. 30. 이전 1 2 3 4 5 다음